[……]미디어가 법석을 떠는 셈치고 젊은 사람들은 극히 정상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젊은 사람들은 이런 세상을 아직도 수십 년 살아나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뭔가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라는 등의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을 짬이 없는 것이다.[……]

- 무라카미 류,『사랑에 관한 달콤한 거짓말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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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학을 하고 나서 많이 바쁘다. 우선 오랜만에 수업을 들으니 그것이 바쁘고, 둘째로 이번 학기의 명확한 목표 때문에 바쁘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정이 있어 집에서 다니니 바쁘다. 학교까지는 짧게 잡아도 두 시간 거리. 왕복 네 시간의 거리다.
  그래서 복학 첫 주 금요일에도, 나는 지하철을 타고 학교로 가는 중이었다. 금요일은 그나마 수업이 늦게 있어서 여유롭게 갈 수 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나는 지하철을 타면 늘 서 있는 자리로 갔다. 문과 의자 사이에 있는 공간이다. 거기에 등을 기대고 고모리 요이치의 '포스트 콜로니얼'을 읽으면서 가고 있는데, 전동 휠체어를 탄 남자가 올라탔다.얼핏 봐도 다리가 불편한 듯 싶었고, 왼팔은 없는지 양복을 팔꿈치가 있는 부분 정도에서 묶어놓고 있었다. 그리고 지팡이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남자의 휠체어가 지하철에 올랐을 때, 차내에는 커플로 보이는 남녀가 서 있었다. 사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휠체어 남자는 커플이 있는 방향으로 전동차을 돌리려고 했다. 두 남녀는 어디로 비켜줘야 할 지 몰라 당황했고, 잠시 뒤에 휠체어의 방향을 바꾼 남자는 지팡이로 남자의 다리를 툭 치고는 말했다. "하느님이 주신 비싼 밥 먹고 왜 욕을 먹나?" 나는 이때 직감했다. 내가 당장 내려서 다음 차를 타야 함을. 그러나 그렇게 하면 수업시간에 넉넉히 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결국 나는 그냥 타고 가기로 결정했다.
  휠체어를 탄 남자는 차내의 한 가운데로 나와 설교를 시작했다. 나는 단순히 "예수천국 불신지옥" 식의 장광설일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내용은 주로 이 시대의 젊은이들을 고발하는 식이었다.

  "이 시대가 어떤 시대입니까. 남자가 여자옷을 입고, 여자가 남자옷을 입고, 자리에 앉으면 어른에게 양보하지도 앉고, 다리를 꼬고, 서 있는 어른들에게 발을 살랑살랑 흔들고 있습니다. 남녀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길거리에서 서로를 껴안고, 서슴없이 칠칠맞은 웃음을 흘립니다. 여러분, 이 시대를……"

  그는 한 두 번 해본 게 아닌 듯 막힘없이 술술 이야기해 나갔다. 물론 그건 이야기라기보다는 동일한 내용을 다른 형식으로 반복하는 것이었지만, 어쨌든 혀도 깨물지 않고 잘도 얘기하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그는 주로 어른들이 무시당하는 설움, 자녀세대의 버르장머리 없음 등등을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차내에 있는 사람들의 반응은 별로 없었다. 열렬히 환호하는 사람도 없었지만, 반대로 시끄럽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었다. 아마 그는 장애인이라는 것을 훌륭한 방패로 삼고 있을 것이다. 그의 설교는 계속 이어졌다.

  "왜 아까운 시간을 낭비합니까. 어째서 그 귀한 하느님이 주신 몸을 함부로 굴립니까. 도대체 왜 살아갑니까. 시간이 아깝지 않습니까. 이 시대는 희망이 없습니다. 다음 세대에게는 아무런……"

  이 대목에서 나는 열차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전동차에서 내리며 나는 생각했다.  이전 세대는 항상 그 다음 세대가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그건 고대건 중세건 근대건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것의 가장 큰 이유는, 전 세대가 살아온 날들이 다음 세대가 살아가는 날들과 많이 다르기 때문이며, 동시에 다음 세대는 계속 살아가야 하므로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과거는 모두 좋게만 보이는 법이다.
  그의 말은 그에게 그대로 돌려줄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은 무엇인가? 어째서 그런 말을 공공장소에서 하느라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왜 귀한 시간을 그렇게 낭비하는가? 그건 아마 당신에게 더 이상 해야 할 일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할 게 많고, 함부로 살아갈 여유조차 없다. 그래서 당신과 같은 말을 할 여유도 없다. 나는 앞으로 계속해서 살아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저번달 10일 고려대 일본학 연구센터와 일본문화원이 주최한 심포지엄 ‘문학의 새 지평-기억·경계·미디어'가 열렸었다. 참가자는 시마다 마사히코, 신경숙, 기리노 나쓰오, 구효서 씨. 이걸 꼭 가고 싶었는데, 당시 아르바이트 중이고 시간 내기가 어려워서 포기했었다.
  그런데 우연찮게 인터넷에서 강연 녹음파일을 구할 수 있었다. 시마다 마사히코 씨의 강연을 듣고서 내용이 들을만한 것 같아 녹취하여 번역해 보았다. 몇몇 부분은 동생이 도움을 주었으며, 끝끝내 녹취가 어려운 부분은 일단 괄호로 표시해 두었다. 몇 부분 안되긴 하지만 나중에 지속적으로 확인해 볼 예정이다.
  시마다 마사히코 선생의 강연은 총 40분 가량의 분량으로, 마지막 6-7분에는 직접 쓴 시를 발표했다. 시는 녹취상 행갈이라든가 연의 구분이 어려운 문제로, 강연 자체의 내용만을 번역했다.
  번역의 질은 둘째치더라도 힘들게 듣고 써가며 애쓴 결과물이므로, 가져가실 분들은 되도록이면 주인장에게 알려주셨으면 한다.


◎ 주인장이 주의깊게 들은 내용

[……]항상 생각하고 있는 것은,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말이 시베리아의 오지에 살고 있는 유목민이라든가, 사막에 살고 있는 유목민, 그런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통할 수 있도록 말을 만들어 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세계를 이곳저곳 여행해 온 것도, 다른 나라 말의 힘, 이것을 자신의 언어에 포함시키고 싶다, 이것이 이유였습니다.[……]

[……]궁극의 자유란 것을 추구하면 인간은 결국 야만이 됩니다. 자유의 추구에 본성을 발휘하는 작가가 야만이 되는 것,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당연한 것입니다.[……]

[……]세계에 대한 증오, 이것은 강렬한 집필의 엔진이 됩니다. 자신의 존재를 희박하게 만들려는 세계에 대해서는, 나의 존재를 저주의 말과 함께 깊이 새겨 넣는 것이야말로 복수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고립무원이라는 것은 작가의 훈장입니다.[……]


わたしがいちばんきれいだった時
내가 가장 예뻤을 때

茨木のり子
이바라기 노리코


わたしがいちばんきれいだったどき
내가 가장 예뻤을 때
まちはガラガラと壊れ
거리는 와르르 무너져내리고
思いがけないどころから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青い空のようなものが見えたりした
푸른 하늘 같은 것이 보이곤 했다

わたしがいちばんきれいだったどき
내가 가장 예뻤을 때
周囲のひとだちがたくさん死んだ
주위의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工場で海で名もない島で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없는 섬에서
私はおしゃれのいとぐちを失ってしまった
나는 멋부릴 구실을 잃어버렸다

わたしがいちばんきれいだったどき
내가 가장 예뻤을 때
だれもやさしいおくりものを下さらなかった
아무도 아름다운 선물을 주지 않았다
男たちは挙手の敬礼だけしか知らず
남자들은 거수 경례밖에 몰랐고
清潔なまなざしを残してみんなたって行った
깨끗한 눈빛을 남기고 모두 사라져 갔다

わたしがいちばんきれいだったどき
내가 가장 예뻤을 때
わたしの頭は空っぽで
내 머리는 텅 빈 채였고
わたしのこころはにぶく
내 마음은 무디어
手足だけが栗色にかがやいた
손발만이 밤색으로 빛났다

わたしがいちばんきれいだったどき
내가 가장 예뻤을 때
わたしのくには戦争に負けた
내 나라는 전쟁에서 졌다
そんなたわいないこともあるものかと
그런 어이없는 일도 있는걸까 하며
ブラウスの腕をましくあげて卑屈なまちをわたり歩いた
블라우스의 팔을 걷어올리고 비굴한 거리를 쏘다녔다

わたしがいちばんきれいだったどき
내가 가장 예뻤을 때
ラジオからはジャズが溢れていた
라디오에서는 재즈가 넘쳐 흘렀다
禁煙を破ったどきのようにめまいがした
담배를 다시 피웠을 때처럼 현기증이 났다
わたしは異国の音楽をやたらに楽んだ
나는 이국의 음악을 마음껏 즐겼다

わたしがいちばんきれいだったどき
내가 가장 예뻤을 때
わたしはもっとも不幸だった
나는 가장 불행했다
わたしはもっとも馬鹿であった
나는 가장 어리석었다
わたしはもっともさびしかった
나는 가장 쓸쓸했다

だから決心した 出来ることなら永く
그래서 결심했다 가능한 한 오래
 生きることを
  살아야 한다고
年取ってから非常に美しい絵をかいだ
나이를 먹고나서야 몹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フランスのルオじいさんのように
프랑스의 루오 할아버지 처럼


*  죠르주 루오(Georges Rouault, 1871~1958) : 20세기 전반을 대표하는 프랑스의 종교화가. 어려서부터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나 그의 예술이 본격적으로 확립된 시기는 50세 이후였다.

원문 :『일본名詩選』,김희보 편저, 종로서적, 1993
번역 : 자가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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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바라기 노리코(茨木のり子)는 1926년에 태어난 일본의 시인으로, 일본이 패전했을 때 열 아홉살이었다. 그녀는 전후 일본 시단에서 여성시인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했으며 이 시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국정교과서에도 실렸다. 1990년에는 '한국현대시선'을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2006년 2월, 79세의 나이로 이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결심은 실현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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