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글이 많이 늦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기에, 성의를 갖추고 논쟁을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이제야 어느 정도 시간이 주어졌기에 글을 씁니다.
  제가 지X 씨의 문제제기에 대해 줄곧 취해 온 입장은, 지X 씨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지X 씨의 문장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비문이 많고 내용의 맥락을 파악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말 그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지요. 지X 씨가 올려주신 페이퍼와 새로운 답글들을 읽고, 조금 정리가 된 것 같습니다. 다만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저는 지X 씨의 문제제기에 대해 대답하기 위해 들인 시간의 대부분을, 저의 논리를 가다듬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X 씨의 의견을 정리하는 데 써야만 했습니다. 정리된 형태의 글이 아니라 답글 여기저기에 드러나 있는 생각의 조각들과, 올려주신 페이퍼에 있는 내용을 '추출'해서 지X 씨의 주장을 구성하는 데에 꽤나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지요. 박사과정 중이시니 바쁘신 거야 두말 할 필요도 없겠지만, 조금만 더 신경 써서 글을 써주셨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작은 바람이 들었습니다.

  지X 씨가 던진 질문을 재구성해서 압축하면,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집니다.

  a) 제가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힘'에 대해 누군가 글을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b) 세계질서라는 것이 혹은 세계평화라는 것이 '힘'에 의한 정치이고, 그렇다면 '한국'이 지향하는 것은 그런 '힘'을 행사하는 위치가 되는 것인지, 그런 식의 세계질서체계를 수정하려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이 두 가지 의문에 대해 대답하기 위해, 제가 생각하는 국제정치에 대해 쓰고, 그 다음에 지X 씨의 의견에 대해 논의해 보고 싶습니다.

  먼저, 국제정치의 '힘'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려 합니다.  앞의 답글에서도 잠깐 언급되었듯, 국제정치에서 '힘(Power)'라는 것은 "자식의 목적이나 목표를 실현하는 능력"입니다. Robert Dahl은 "없다면 하지 않았을 일을 타자에 대해 시키는 능력"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쪽에서 작용하지 않았으면 하지 않았을 일을, 이쪽이 움직임으로써 상대가 했다면, 이쪽은 상대에 대해 힘을 가진 것"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실제로 이런 '능력'을 측정하는 것은, 그리고 상대방의 행동을 예측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보통은 '힘'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로 나누게 됩니다. Joseph Nye는 이 '힘'을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로 나누고 있는데, '하드 파워'는 군사력이나 경제력 등의 '직접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힘, '소프트 파워'는 문화나 학문, 스포츠와 같이 '간접적인 효과'를 가지는 힘입니다. 이러한 '힘'의 정의에서 나오는 것이, 바로 'Balance of Power'(세력균형) 이론입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사람들이 폐기되어야 할 이론이라고 논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국제정치의 구도와 변화를 설명하는 데 유용한 도구이지요. 그리고 또, 많은 것들이 변한 현대사회에서도, 'Balance of Power' 이론은 국제정치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틀로서 작용하고 있습니다.
  'Balance of Power' 이론은 대충 갖다 붙이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그 의미가 왜곡된 경우가 많지만, 기본적으로 '힘'이 균등하게 분포되어 있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함축적으로, 바로 그 '세력균형'이 국제질서의 평화를 유지해준다는 것이지요.  'Balance of Power'가 정책에 대한 용어가 되면, "어느 국가가 압도적 우월을 달성하는 것을 막기 위해 행동"하는 정책을 의미하게 됩니다. 1차 세계대전 이전의 유럽이나, 미·소 냉전시대 미국의 정치(70년대 미국의 국무장관이었던 키신저는 'Balance of Power' 이론의 신봉자였지요)가 그 대표적인 예에 해당하겠습니다. 이런 '정의'와 '정책'이 작동하려면, 두 가지의 전제가 필요합니다.

  ① 국제정치의 구조는 무정부적 국제 시스템이다
  ② 국가는, 자신의 독립을 지고의 것으로 간주한다

  1번은, 국제정치가 국내정치처럼 정부가 구성되어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고진은『윤리 21』에서 이미 이렇게 지적한 바 있습니다.

  [……]칸트의 생각으로는 법은 바로 도덕성의 실현이 어렵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국제법은 그 전형이다. 국가간의 관계에서 도덕성은 가장 곤란한 문제다. 주권국가는 그것을 초월하는 것을 갖지 않게끔 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규제하는 법에 승복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국제법은 실제로는 어떤 강국의 '폭력'에 의해서만 실현된다. 그 때문에 그것은 그러한 강국의 이해관계에 종속되기 쉽다.[……](가라타니 고진『윤리 21』, 2001, 177-178쪽)

  그가 이야기한 것은 '국제법'에 대한 것이지만,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주권국가는 그것을 초월하는 것을 갖지 않게끔 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이러한 국제 시스템은, 2번 전제를 자동적으로 요청합니다. 그것의 의미는, 국가의 '주권'이라는 것이 대내외적으로 절대적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장 보댕이 16세기 후반『국가론』을 통해 역설한 '군주주권'의 절대성이 베스트 팔렌 조약에 의해 국제질서의 기초로 자리잡은 것은 1648년의 일입니다. 그 뒤 '군주주권'의 개념은 '국민주권'의 개념으로 바뀌고 세부적으로 많은 발전이 있었지만, 그것이 절대적이며 불가침하다는 원칙은 국제사회에 의해 몇 번이고 확인된 바 있습니다. 어째서 국가의 주권은 절대적으로 존중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미국의 정치학자 Joseph Nye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원래 주권국가의 내정에 대해서는, 비개입이라는 게 국제법의 근본규범이다. 비개입이야말로, 질서와 정의 양쪽에 관련된 극히 강력한 규범이다. 질서는, 혼란(카오스)에 일정한 제약을 가져오는 것이다. 국제적 무정부성 - 상위의 정부가 존재하지 않는 것 - 은, 만일 일정한 기본원칙이 준수되면, 반드시 혼란과 같은 의미인 건 아니다. 주권과 비개입이야말로 무정부적인 세계 시스템에 질서를 가져다주는 두 원칙인 것이다. 그것과 동시에, 비개입은 정의(正義)와도 관련되어 있다. 국민국가라는 것은, 사람들의 공동체 - 일정한 국가로서의 영역내에서 공통의 생활을 발전시키는 권리를 정당히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공동체이기도 하다. 외부의 사람들은, 그들의 주권과 영토보전을 존중하지 않으면 안된다.[……](ジョセフ・ナイ『국제분쟁』, 2007, 189쪽)

  이 말은, 주권의 인정과, 그에 대한 비개입이 '무정부적 국제질서' 속에서 안정을 찾을 수 있는 방편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국가의 '주권'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있어 왔고, 그것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 그리고 '국가'라는 것을 국제관계(international relation)의 기본 단위로 봐야 하는가의 문제까지도 대두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국제질서 속에서, 국가가 그 주권을 가지고 국제정치의 중요한 행위주체(actor)로서 작동하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입니다. 가라타니 고진은 그의 최근 저서『세계 공화국으로』에서 이렇게 논하고 있습니다.

  [……]주권국가는 타국과의 관계 없이는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권'이란 일국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국가의 승인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권국가는, 타국이 주권국가가 아니라면 지배해도 좋다는 것을 함의합니다. 그것은, 유럽 밖에도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 의미에서, 주권국가는 본성적으로 팽창적인 것입니다. 주권국가의 팽창을 멈추는 것은, 다른 주권국가 뿐입니다. 혹은, 그 주권국가에 지배된 지역이 독립해서 스스로 주권국가가 되는 것의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따라서, 주권국가는 필연적으로 주권국가를 불러냅니다. 이것은, 절대주의국가가 시민혁명에 의해 국민국가로 전환해도 마찬가지입니다.[……](柄谷行人『세계 공화국으로』,2006, 206쪽)

  그런데, 이 두 가지의 전제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낳습니다.

  [……]리얼리즘은, 이 아나키한 구조야말로, 국제관계에 있어서 전쟁을 불가피한 것으로 하는 근본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왜인가. 국가를 뛰어넘는 권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는 자국의 안전을 자력으로 보장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다. 즉, 자국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조(自助) 또는 자력구제라는 방법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각 국가는, 스스로 군비증강을 꾀하거나, 타국과 군사동맹을 맺거나 함으로써, 자국의 생존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된다. 즉 국가는, 뭔가의 수단으로 힘을 추구하지 않으면, 자국의 정치적인 독립성을 확보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힘의 추구는 그 자체가 아무리 방위적이어도, 타국에게 있어서는 무시할 수 없는 위협이다. 그 때문에 타국도, 그러한 위협으로부터 자국을 지켜려 해서, 스스로 군비를 증강하거나, 우호국과 군사동맹을 맺으려 한다. 그 결과, 쌍방의 국가 관계는 한층 적대적인 것으로 변화한다. 즉, 자국의 안전보장을 확보하려고 해서 힘을 추구하면, 그것이 타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 되고, 타국도 힘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의 국제정치학자인 하츠에 의해 지적된, "안전보장의 딜레마"라고 불리는 상황이다.[……](山田高敬・大矢根聡『글로벌 사회의 국제관계론』,2006, 28-29쪽)

  이러한 'Balance of Power' 방침에 의한 무정부적 국제질서는, "그것이 '주권', 즉 '독립'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인 바에야, 전쟁이나 민족 자결의 침해를 그만두는 것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도출합니다. 이러한 국제질서는, 결국 1차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을 낳았습니다. 무정부적 국제질서 속에서 'Balance of Power'로 평화를 유지하려는 생각이 비참한 결과로 이어지면서, 세계는 '집단안전보장(collective security)'을 구상하게 됩니다.

  [……]1918년 1월, 미국은 참전 이유로써 14개조의 선언을 발표했다. 그 14번째가 가장 중요했다. 그것은 "대국(大國), 소국(小國)을 묻지 않고, 정치적 독립과 영토보전의 상호적 보장을 서로 부여하는 일을 목적으로, 명확히 규정된 협약아래, 제(諸) 국가의 전체적인 연합조직이 결성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사실상, 윌슨은 국제시스템을, 밸런스 오브 파워에 기반한 것에 집단안전보장에 기반한 것으로 바꾸려 했던 것이다.[……](ジョセフ・ナイ『국제분쟁』, 2007, 108쪽)

  이 '집단안전보장'이라는 개념은, 이전까지는 국제정치상 실현되지 않았던 개념으로, '무정부적 질서' 속에서 따로 따로 행해지던 '개별 국가의 자조적(自助的) 안전보장'을 집단의 것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침략국이 강대한 힘을 갖고 있다면, 개개의 국가는 당해낼 수 없지요. 그러나 비침략 국가가 침략자에 맞서 결속한다면, 힘은 비침략 국가 쪽에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국제 안전보장은 집단의 책임이 되고, 이전처럼 '중립'이나 '무임승차'를 허용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익히 알려진대로, 이 '국제연맹'은 자기의 목적을 다하지 못합니다. 미국이 참가하지 않은 이상 제대로 작동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결국 세계는, 제 2차 대전이라는, 역사상 없었던 비극을 맞이하게 됩니다. 1945년 창설된 국제연합의 헌장 전문(前文)이 가장 처음 들고 있는 이념은, "우리들의 일생 동안, 두 번 다시 말로 다할 수 없는 비애를 인류에게 안겨준 전쟁의 참해로부터, 장래의 세대를 구한다"는 결의입니다. 이후는 미·소 양국을 중심으로 한 냉전 체제와, 냉전 종결 이후의 세계가 놓여지게 되지요. 여기까지가 제가 간략하게 살펴본 국제정치의 역사입니다.

  제가 이렇게 긴 이야기를 늘어놓은 이유는, 이 관점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에는 사실상의 논쟁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굳이 구분하자면, 저는 국제관계(international relation)라는 학문 안에서 positivist의 관점에 서 있는 것일테고, 이 관점을 부정한다면 post-positivist의 관점에 있다고 볼 수 있겠지요. 물론 제가 positivist의 관점이라고 해서 국가를 신봉하고 있는 건 아니고, post-positivist라고 해서 국가를 완전히 부정하고 있는 것도 아닐 터입니다. 제가 확인하고 싶은 건, 지X 씨가 이야기한 "국가(nation-state)의 사고틀"을 벗어난다는 게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냐는 것입니다. 제가 위에서 서술한 몇 가지 전제들 - 국제질서는 기본적으로 anarchy하다, 국가의 주권은 다른 나라에 의해 지탱된다 등등 - 을 완전히 거부하신다면, 토론을 할 이유는 아마 없어질 것 같습니다.
  아마도 지X 씨는, 저의 전제들을 전부 부정하시지는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세계시민'이라는 논리를 이끌고 가는 축은 '국가'라는 사고체계이죠]라고 하신 걸 떠올린다면 말이죠. 일단 그렇다고 가정을 하고, 저의 논의를 다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지X 씨가 제기한 문제들을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국민국가와 시민권이라는 틀이 무엇을 기반으로 지탱되는가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2) 현재의 UN 중심의 '국제질서'나 '안전보장' 자체에 대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3) 인권·인도주의의 애매모호함을 고려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건 제가 멋대로 '추출'해서 '정리'한 문제들이기 때문에, 놓친 것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그런 것들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1번은 제가 제시한 국제정치의 관점에 따르면, 큰 문제가 없습니다. '국민국가'는 어디까지나 타국에 대해서 '국민국가'이며, 그 영역 내에서 시민권은 자리하게 됩니다. 이건 '이론'이나 '이상'의 영역에 속한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국민국가'가 현실에서 기능하는 방식이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지X 씨는 페이퍼에서 이렇게 얘기하셨지요. [The identification of ‘us’ through constructing an image of the enemy shares its dynamics with the corroboration of nation-state and sovereign space through an arrangement of wars.] 정확히 그렇습니다. '국민국가'와 '시민권'은 그런 식으로 구성됩니다. 현대의 '국가'라는 개념은 분명 (냉전을 포함한) 전쟁에 의해, '적'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구성된 것입니다. 이걸 재검토하자는 말은, 과연 무얼 어떻게 하자는 의미일까요. 그냥 그렇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 뿐일까요. 우리는 '국민국가'라는 것이 이데올로기와 다른 여러 가지 도구들을 이용해 자신을 성립시켜 왔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그런 문제들을 완벽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대현의 용법을 빌리자면) 이 점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걸까요. 저는 고진의 지적대로, '국가'는 다른 국가에 대해서만 '국가'이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가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결코 '인식'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문제입니다.
  2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냉전의 종결 이후, 국제질서의 핵심 축이라고 생각되는 UN에 대한 비판은 많아졌습니다. 지X 씨 역시 UN 체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요. 저는 이에 대해서, UN 체제 이외의 다른 대안을 제시하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UN체제의 문제점 역시, 이미 많은 사람들에 의해 알려져 왔습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문제,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에 의한 지배의 문제, 냉전의 종결 이후 증가한 새로운 형태의 분쟁(민족분쟁, 종교분쟁 등)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문제 등등. 이 문제들은 다들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앞에서 얘기했듯이, 국제연합이 결성된 목적은, 다름이 아니라 '집단안전보장'에 있습니다. 지X 씨는 이런 '안전보장'의 개념이 낡은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지만, '집단안전보장'은 주권국가가 존재하는 한 가장 유효하게 기능할 '국가의 안전보장'을 위한 수단입니다. 만일 이 점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려면, 우리는 UN 체제의 문제점을 어떻게 하면 수정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편이 훨씬 나으리라 봅니다.
  UN 체제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냉전 체제 속에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던 사정을 고려하는 편이 공정할 것입니다. UN 창설 이후 지금까지, UN이 행한 평화유지활동은 총 65건인데, 냉전시기(45년 이후~80년대 중반까지)에 시작된 활동은 단 12건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53건은, 모두 냉전의 종결 이후에 시작된 활동들입니다. UN의 하이레벨 위원회 보고(웁살라 대학 평화·분쟁학부와 오슬로 국제평화연구소의 자료)에 의하면, 명확히 냉전 이후(86-88년)부터 내전에 대한 UN의 평화유지·평화구축 활동이 활발하게 시작됩니다.(明石康,『국제연합』, 2006, 124쪽) 연간 평균 9천만명의 사람들에게 식량을 제공한 유엔의 세계식량계획(WFP) 역시, 그 본격적인 활동은 냉전이 와해되던 1980년대부터입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UN 체제에 대한 비판은 조금 치우쳐 있는 듯 합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강대국의 playground'라는 비판과, 여러 가지 문제점들은 익히 인식되어 온 것입니다. UN 체제에 대한 비판은, 그것이 분명 현대의 국제질서를 유지하는 기능을 하고 있는 이상, 그에 대한 대안이 함께 제시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지X 씨가 페이퍼에서 꽤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 '인권'의 문제 역시, 그것을 재검토한다는 것의 의미를 명확히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X 씨는 페이퍼에서, Jennifer Hyndman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Jennifer Hyndman argues that one should distinguish human rights, human security and humanitarian intervention, claming against what she calls ‘UN humanism.’  Human security is distinguished from human rights in that the former is established not as a law meaning it is exposed to being applied selectively as shown in the case of Rwandan genocide, while the latter is elucidated in United Nations documents. Hyndman points out that ambiguities of human security lead to its operation as “imperial benevolence,” and as a common adaptation of human rights. Humanitarian law is also out-dated, considering that it was drafted right after the Second World War by a formulation of liberal states and that most recent wars are not waged between countries. Basically, a lack of clarity in the term ‘humanitarian’ raises different questions on how, when and, whether foreign intervention could be applied since “while states remain major actors and members of the UN, the balance between the legitimate power of states and individual human rights appears to be shifting.”[……]

  Hyndman이 이야기하는 문제점, 즉 human rights와 human security의 구분은, 바로 그녀가 이야기하는 'UN Humanism'의 이념을 바탕으로 성립한 것입니다. human security 문제가, UNDP의 1994년 인간개발보고서에 의해 국제사회에 제기되었다는 건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리고 일본의 주도에 의해 "인간의 안전보장(human security)에 관한 국제위원회"가 설립되었고, "인간의 안전보장 기금" 역시 마련되었습니다.(東海大学平和戦略国際研究所 編『21세기의 인간의 안전보장』,2005, 123-148쪽) Hyndman이 지적한 문제는 이미 국제사회에서 제기된 바가 있는 것이고, 앞으로의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풀어나아갈까에 있는 것이 아닐까요(참고로, 이 문제도 심포지움에서 거론된 바 있습니다. 제가 글에 쓰지 않았을 뿐이지요)
  그리고 'UN Humanism'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그것이 지니는 의미 - 그러니까 우리가 '인권'이라는 보편적인 무엇을 상정함으로써 생기는 의미 - 를 고려할 필요도 있을 겁니다. 아래는 슬라보예 지젝의 이야기입니다.

  [……]'보편적 인권'은 전 정치적이기는커녕, 본래적인 정치화의 적실한 공간을 가리킨다. 인권이 결국 뜻하는 바는 보편성 자체에 대한 권리─정치행위자가 (특정한 정체성의 담지자인) 자신과 근원적 불일치를 주장할 권리, 스스로를 사회 구조물에서 어떠한 고유한 자리도 갖지 않은 '열외자'(supernumerary)라고, 그래서 사회 자체의 보편성의 주체(agent)라고 상정할 권리다. 따라서 이 역설은 매우 엄밀한 것으로, 보편적 인권이 비인간적인 상태로 환원된 사람들의 권리가 되는 역설과 대칭을 이룬다. 보편적인 '메타정치'적 인권을 거론하지 않으면서 시민의 정치적 권리를 구상하려고 하는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정치 자체를 잃어버린다. 다시 말해, 특수한 이해들의 협상인 '포스트정치'적인 놀이로 정치를 환원하고 마는 것이다.[……](슬라보예 지젝「반인권론Against human rights」,『창작과 비평』2006년 여름호, 379-404쪽)

  지젝이 지적하듯이, 우리는 결국 '보편적인 인권'을 그냥 비판하는 것으로 끝낼 수가 없습니다. 그러는 순간, 우리는 들고 싸울 무기를 잃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제가 앞에서 지적한 점들도, 그리고 앞으로 지적할 부분도 바로 그런 인식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긴 글을 쓴 것은, 지X 씨의 의견을 명확하게 포착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거기에서 '의문' 이외에 다른 걸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내셔널리즘은 분명히 경계해야 하며, 인류가 존재하는 한, 언젠가는 벗어나야 할 무엇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 지속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방안을 찾는 것이, 지X 씨가 지적한 국제질서 속의 '외교'가 할 일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 방안으로서, 가라타니 고진이 제시하는 비전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며, 또 그게 가장 가까운 미래에 달성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가라타니 고진은,『세계 공화국으로』에서 칸트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서로 관계를 맺고 있는 여러 국가에게 있어서, 다만 전쟁 밖에 없는 무법의 상태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는, 이성에 의해서는 다음 방책밖에 없다. 즉, 국가도 개개의 인간과 마찬가지로, 그 미개한(무법의) 자유를 버리고 공적인 강제법에 순응하는 것, 그리고 하나의(무엇보다 끊임없이 증대하고 있는) 제민족합일국가(civitas gentium)을 형성해서, 이 국가가 결국에는 지상의 모든 민족을 포괄하게 한다, 라는 방책 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국제법의 사고에 따라서, 이 방책을 취하는 것을 전혀 원하지 않고, 그런 까닭으로 일반명제로서 in thesi 올바른 것을 구체적인 적용면에서는 in hypothesi 물리치므로, 하나의 세계공화국이라는 적극적 이념 대신에(만일 모든 것을 잃어서는 안된다고 한다면), 전쟁을 방지하고, 지속하면서 항상 확대하는 연합이라는 소극적인 대체물만이, 법을 혐오하는 호전적인 경향의 흐름을 저지할 수 있는 것이다.(『항구적 평화를 위하여』,宇都宮芳明 역)[……](柄谷行人『세계 공화국으로』,2006, 222쪽)

  이 칸트의 이념을 바탕으로, 가라타니 고진은 자신의 구상을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국가에 대항하면 좋을까요. 그 내부로부터 부정해 나가는 것만으로는, 국가를 지양(揚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국가는 다른 국가에 대해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에게 가능한 것은, 각국에서 군사적 주권을 서서히 국제연합에 양도하도록 만들고, 그것에 의해 국제연합을 강화·재편성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헌법 제 9조에서 전쟁포기란, 군사적 주권을 국제연합에 양도하는 것입니다. 각국에서 이렇게 주권의 포기(放棄)가 행해지는 이외에, 제(諸) 국가를 지양하는 방법은 없습니다.[……](柄谷行人『세계 공화국으로』,2006, 225쪽)

  국제질서에 대한 저의 견해와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생각을 결합했을 때, 저는 이런 고진의 생각이 가장 합리적이며 또한 효율적인 것이라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X 씨가 ['동북아시아'든 '유럽연합'이든 미국을 견제하고 '자국'을 보호한다는 식의 외교는 결국 '힘'을 갖게 되면 '미국'이 하던 똑같은 짓을 또 다른 국가들에게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 그다지 찬성하지 않습니다. 각국이 연합체를 구성하고, 그로인해 공동체 의식이 생겨나는 것은, 결국 지X 씨가 말하는 "냉전체제 때 그려진 틀"이라는 것을 벗어나는 유효한 방안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다음은 최장집 교수의 글입니다.

  [……]동아시아에서의 대립과 갈등의 구조가 탈냉전, 세계화와 더불어 현저하게 변했다 하더라도 한반도가 분쟁의 진앙지가 되는 한 이 대립의 구조는 다른 형태로 재생될 수밖에 없는 위험을 갖는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동아시아라는 개념으로 이 지역을 지칭하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냉전시기 동아시아라는 말은 이 지역이 양분되어 있었기 때문에 성립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러므로 동아시아라는 말 자체가 이 지역의 공동관심사와 이해관계, 공동의 목표, 그리고 공동의 이상을 표현하기 때문에 이 말은 냉전시기의 대립구조를 완전히 허물어 버린다는 의미에서만 가능한 말이다. 즉 그것은 이 지역을 분할했던 냉전시기의 대립구조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동아시아 공동체는 곧 동아시아의 평화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이고, 이 지역의 평화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체제를 지칭하는 것이다. [……] 여기에서 동아시아라는 말은 두 가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냉전으로 분할된 지역임을 부정하고, 어떤 것을 공유하는 지역이 되었다는 의미를 갖는다. 다른 하나는 세계의 패권국가일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의 패권국가로서 미국이 그 필요에 따라 외부로부터 부여한 명칭이 아니라, 이 지역 국가들 스스로가 갖는 내적 요구와 필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동아시아라는 지역의 범주를 호명해냄으로써 우리는 무엇에 대항하는 안보가 아니라 스스로의 평화를 만들기 위한 공동체를 상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최장집「동아시아 공동체의 이념적 기초 - 공존과 평화를 위한 공동의 의미지평」,『아세아연구 통권 118호』,2004, 98-99쪽)

  이 정도로 제 이야기를 마칠까 합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무엇에 속고 있었냐를 지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현실적인 장 안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하는가를 생각하는 것도 중요한 게 아니냐는 것입니다. 앞에 인용한 칸트의 말도, 아마 그런 맥락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포스트'가 붙은 모든 이론과 개념들이 가져다 준 '의심'과 '재검토'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와 똑같은 의미에서, 현실을 바꿀 구체적인 방안을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 이건 사족이지만, 지X 씨는 제 답글이 꽤나 날선 것처럼 느끼셨나 봅니다. 확실히 저는, 이전의 답글에 비해 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는데, 그건 다름이 아니라 지X 씨의 답글이 '불성실'했기 때문입니다. 김수영 시인의 말을 좀 빌리자면, 저는 이상주의적이든 교조주의적이든, 그 어떤 주장이든지간에 성실하기만 하다면 저 역시 성실하게 답글을 달 용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불성실한 주장에 대해서는 전혀 성실하게 답변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제가 "타인의 오해나 편견, 고정관념"에 대해 "너무 지나칠 정도로 참을성이 없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 글을 쓰는 대부분의 경우는, 제가 그 사람의 주장이 불성실하다고 판단했을 때입니다. 그 이외에는, 그리 지나칠 정도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기억이 없군요. 이건 아마 성격 문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예전에 지X 씨가 했던 말대로, 공부를 "하는 방법이 틀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님 공부 자체가 무엇인지 모르고 하고 있던가."

  * 인용의 출전 중, 한자나 일본어로 저자의 이름이 적힌 저작들은 모두 일본어 서적입니다. 제가 번역해서 썼기 때문에, 오역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원래는 이런 글을 쓰려고 했던 게 아니었다. 나는 '장기전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보다 길고 정리된 글을 쓰려 했다. 그러나 내가 이곳에서 경험한 것들만으로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글로 풀어내기가 불가능했다. 그것은 보다 깊은 공부와 폭넓은 시야를 확보함으로써 가능한, 미완의 과제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우선 당장 정리해 두어야 할 것을 정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의 극히 일부분이라도 발신하는 것뿐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글을 읽어주었으면 한다.


  일본에 오기 직전까지 내가 했던 일은, 바로 '자본론 강독'이었다. 7월 중순까지 친구들과 '자본'을 읽은 나는, 그 뒤 한 달여 동안 유학 준비를 했고, 8월 27일에 이곳 일본에 도착했다.
  처음 도착해서 겪은 여러가지 에피소드나, 그 밖의 자질구레한 일들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들은 대부분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일어나는 것이거나, 그 나라의 '외면'에 불과한 것들로, 진정 '외국'으로서의 차이를 느꼈다고는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차선이 반대라든가, 거리가 깨끗하다든가, 사람들이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든가, 한국 화폐는 일본에서 환전이 안된다든가 - 이런 일들은 그냥 2박 3일 정도의 여행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것이고, 현대 사회에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이야기다. 토크빌이 증기선을 타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가야 했던 시절과는 달리 겨우 2시간 남짓 비행기를 타면 올 수 있는 이 나라에 대한 인상비평은, 굳이 내가 덧붙이지 않더라도 이미 산 같이 쌓여 있고, 내가 한 두 줄 덧붙일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이곳에 도착해서 일상에 대해 거의 아무런 글도 쓰지 않은 건 바로 그런 내 고지식함에서 온다.
  굳이 기록으로 남길 만한 것은, '일본인론'으로 요약되는 수많은 저작들 - '국화와 칼', '아마에의 구조', '다테 사회' 등등 - 이 어떤 심원한 고찰에서 출발한 것은 아니었다는 깨달음이다. 일본인과의 생활은, 수많은 '일본인론'이 말하고 있는 그대로를 나에게 전해주었다. 이들은 정말로 '혼네'와 '다테마에'라는 것을 갖고 있으며, 그것에 대해 아무런 혼란도 일으키지 않는다. 그리고 '다테마에'라는 것을 '거짓말'과 동일한 것으로 인지하지 않으며, 그것 역시 '혼네'와 똑같이 중요한 것이라 믿는다. 이런 것들이 아무 여과장치 없이 다가왔기 때문에, '일본인론'이 일종의 과장된 '상상'일 거라고 생각했던 내게는 일종의 충격이었다.

  내가 '타자'로서의 외국인에 대해 강력하게 인지하기 시작한 것은, 웃기게도 일본인이 아니라 중국인에게서 왔다. 나는 내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이곳에서도 토론을 하고 싶어했는데, 이곳의 토론 써클에 몸담고 있는 학생과 나, 그리고 같은 클래스의 중국인 학생 이렇게 셋이서 일본어로 토론한 일이 있었다. 우리는 대략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토론했는데, 중국인 학생의 일본어가 그리 수월한 편은 아니었지만, 별 문제 없이 진행되었다.
  내가 '타자'로서 중국을 인지한 것은, 그 중국인 학생이 '타이완 문제'에 대해 너무도 극단적인 발언도 서슴치 않았기 때문이다. "타이완이 '독립'이라는 말을 꺼내는 그 순간이 바로 전쟁이다"라는 그 학생의 발언은, 그동안 양안(兩岸) 문제에 대해 별 관심이 없던 나에게는 꽤 충격적이었다. 나는 그 발언이 어느 정도 일반적인가 물었지만, 그의 답변으로 - 그리고 그 뒤의 나의 조사로 - 알게 되었듯, 그것은 일반적인 중국의 여론이었으며, 극론에도 속하지 못하는 발언이었다. 저우언라이가 나왔다는 난카이(南海) 대학 - 그 친구 말로는, 중국에서 10위 안에 든다고 하는데 - 에서 온 그 학생의 발언은, 중국에서도 제법 배웠다는 사람의 생각을 대표하고 있었기에 외상적으로 다가왔다.
  나중에 또 기술하겠지만, 이 중국인 친구가 자국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가라는 문제는, 내게 현재 중국의 위치를 보여주는 듯이 보였다. '중국은 현재 자본주의 국가화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세계에서는 상식선에 속하는 질문을 던졌을 때, 이 친구의 논리는 매우 애매하면서도, 태도는 강경했다. 그는 중국이 자본주의 국가라는 사실을 일단 부정했다. 내가 제10차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통과된 물권법(物權法)을 들먹이자, 그는 그것이 중국 헌법 상에 표현된 권리인 건 맞지만, 중국의 헌법 상으로는 모든 토지가 (원칙적으로) 국가의 소유라는 점을 들었다.
  그럼에도, '그렇다면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가 긍정적인 답변을 한 건 아니다. 수업 시간에도 중국의 종교인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중국에도 종교의 자유가 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가 했던 발언들에 비추어 볼 때, 그 발언은 중국이 공산주의 일당 독재에 의한 나라라는 무서운 이미지를 벗겨내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물론 나는, 중국의 추기경 임명이 교황청이 아니라 중국 정부에 의해 강제로 이루어졌다는 기사를 예로 들면서 중국의 민주주의가 아직 서툰 단계에 있다는 걸 지적했다. 이런 모순은, '중국'이라는 나라가 현재 가지고 있는 가능성과, 반대로 그만큼 아직 벗어나지 못한 구태들이 부딪치면서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덧붙여서, 그들이 대부분 자국에 깊은 자부심을 갖고 있고, 나라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도 말해두고 싶다.

  이런 동아시아 문제에 대한 생각이 보다 깊어진 것은, 타이완 출신의 친구와 친해지면서부터다. 이 친구의 외국인 등록증에, 국적은 '중국 China'라고 적혀 있지, 타이완이라고 적혀 있지 않다. 타이완은 현재 국제연합에 가맹되어 있지 않으며, 수교를 맺고 있는 국가도 몇 개 안된다. 중국의 압력이 너무 거세기 때문이다. 한국 역시 타이완과 수교를 단절하고 중국과 수교를 맺고 있는데, 이 친구가 내게 이 점을 지적했을 때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이 친구는 타이완의 독립에 대해 비관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과의 통일을 찬성하는 것도 아니다. 이는 현재 타이완 젊은이의 전형적인 정치의식을 보여주는 것인데, 중국의 발전과 미국의 태도 등을 고려할 때, 그들의 자포자기식 발언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들을 수 있어서 흥미로웠던 점은, 타이완 사람들의 일제시대에 대한 태도이다. 중국인의 역사인식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타이완 인의 일제시대에 대한 역사인식은 그 방향이 달랐다. '일제시대는 타이완에게 축복이었다'라는 발언이 가지는 울림은, '일제시대는 한국에게 축복이었다'라는 말의 울림과 완전히 다르다. 그리고 타이완에서 그 발언은, 나름대로 지지를 받고 있으며, 사회적으로 매장될 수준의 문제도 아니다. 물론 이 말을 '전해준'(본인은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 친구가 일본의 구 제국대학 중 하나인 국립 대만 대학에서 왔다는 건, 역사가 만들어 낸 일종의 희극인지도 모른다.

  일본인의 역사인식은, 내가 수업에서 배우고 책에서 읽었던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이야기를 나눈 20대 초반의 젊은 일본인들은, 1) 지나간 역사에 대해 그렇게까지 집착할 필요가 있느냐, 2) 일본인은 군사대국이 되려는 야망이 추호도 없다, 이 두가지를 거의 반드시 이야기했다. 한일 양국의 역사에 대해 꽤 깊은 관심을 갖고 있고, 비판적인 의식을 지닌 한 친구마저, '지난 역사에서 일본이 잘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 얘기해서는 발전적인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잖아'라고 말했을 때, 나는 이 문제가 그리 녹록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게 있어 매우 흥미로웠던 것은, 역사 인식에 관해 토론했던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내게 "(그래서) 한국인들은 일본인을 싫어해?"라고 물었던 점이다. 일본인은 '미움받는다는 것'에 대해 일종의 거부감을 갖고 있으며, 그것은 국가적/역사적 차원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도 나타나는 듯 하다. 나는 이 문제가 거대 담론을 감추거나 불필요한 것으로 만드는 작용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이들의 발언은 국가적/역사적 차원의 문제를 개인의 차원으로 환원시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위에서 말한 2) 일본인은 군사대국이 되려는 야망이 추호도 없다, 라는 발언을 할 때, 뒤에 꼭 따라 붙는 것은 "정치인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이라는 말이다. "일본국민 누구도, 전쟁을 하고 싶어하지는 않아. 정치인들이 문제지."라는 다른 친구의 발언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그 정치인들을 뽑은 사람은 일본 국민이 아닌가'라는 문제를 여러 번 제기했지만,  일본 젊은이들의 정치 불신은 거의 일상화되어 있기에, 내 문제 제기는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또한 한일 양국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라는 문제에 대해서도, 대부분의 일본 젊은이들은 '시민 차원에서의 교류'를 이야기했다. 주로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해, 우리가 지금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듯이 앞으로도 양 국민이 이야기를 나누면, 양국간의 역사인식 문제는 해결되지 않겠느냐는 논조이다. 역사인식의 문제에 있어, 정치나 외교 등의 국가적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듯이 보였다.
  이들의 이런 태도는, 한국이나 중국의 역사인식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 있는지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일대일로 대화를 나누었을 때, 이야기가 통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수많은 한국인 중에, 일본인 개개인을 미워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어쩌면 이런 문제점들이,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자주 빚어온 외교마찰의 중요한 원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도문제는 몇 번인가 거론되었지만, 나로서는 그리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주제였다. 내 나름대로 면밀히 검토해 본 결과, "독도는 한국의 영토이다"라고 100% 확실하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독도 문제에 대해 알고 있는 일본의 젊은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고, 그 많지 않은 사람들의 대부분은 한국이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것에 대해 '국제법 위반'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만 덧붙여 두고 싶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할 기회를 얻었기 때문에, 제 29회 국제 학생 심포지움에 같이 참가하자고 권유한 일본 친구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그런 심포지움이 있다는 정보를 몰랐기 때문에 고맙기도 했지만, 보다 심도 깊은 토론과 의견 교환이 가능할 거라는 기대감 때문에도 그랬다. 생활에 적응하고 주로 일본어 공부를 하느라 느슨해져 있던 내 정신에, 새로운 긴장감을 불어넣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제 학생 심포지움은  매년 12월에 열리는 일본 최대의 학생에 의한 토론 이벤트다. 여러가지 주제로 분과회를 나누고, 각 분과회 당 20명 정도의 인원이 참가해 토론한다. 각 분과회는 2박 3일의 일정 중 1박 2일 동안 4번의 토론회(각 3시간씩 총 12시간)를 열고, 그 결과를 마지막 날 보고회에서 보고한다. 79년 처음 시작했으며,올해로 29회 째를 맞이했다. 작년에는 250여명의 학생들이 모여 토론을 벌였는데, 참가 경쟁 비율은 3:1 정도였다고 한다.
  나는 처음에 동아시아 분과회를 신청했지만, 자기소개서가 국제관계 위주로 쓰여 있었던 탓이었는지 일본외교 분과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내게 큰 의미를 지니는 일은 아니었다. 외교 분야에 대해 그리 정통하지 못하다는 게 걱정이 되었을 뿐. 사전 심포지움이 두 차례 있었지만, 도쿄까지는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기에 참석할 수 없었다. 토론회 멤버들과의 첫대면은 공식 심포지움 기간일 수밖에 없었다. 심포지움 전에 날아온 심포지움 자료집을 읽거나, 참고문헌을 들춰보거나 하면서 심포지움을 준비했다.

  12월 21일,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내리고 나서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전날의 숙취를 해결하기 위해 두 번 정도 토하는 일이었다. 토론회장으로 사용될 곳은, 신주쿠 근처의 올림픽 청소년 센터였다.
  도착해서 만난 일본외교 분과회 사람들은 다들 밝고 명민했다. 이렇게 큰 규모의 학부생 대상 토론회가 흔치 않은 관계로, 학생들 대부분은 도쿄대나 쿄토대, 게이오, 와세다, 츄오 등등, 일본 내에서 꽤나 알려진 학교 출신들이었다. 거기다가 분과회가 일본외교인 관계로, 법학과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거기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일본 대부분의 학교의 정치학과는 법학부 안에 속해 있었다). 또 그들 대부분이 외무성에 진출하고 싶어하는, 소위 엘리트들이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장래 일본의 중추가 될 학생들과 깊은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것이 토론회 참가의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그들과 이야기하면서 나는 여러가지를 배우고 또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나보다 나이가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군대가 없으니까), 침착하고 노련하게 토론을 이끌어 나갔다. 어떤 한 사람이 토론을 주도하거나(또는 폭주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묵살하는 일 없이, 다들 성실하게 이야기를 해 나갔던 것이다. 지금 한국의 대학생들을 모아놓고 토론했을 때, 이 정도로 유연하게 흘러갈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다. 내가 그들과 같은 나이였을 때와 비교하면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반면 안도감도 느꼈다. 내노라 하는 일본의, 그것도 법학과 학생들의 머리라고 해서,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의 머리에 비해 특출나게 뛰어나다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토론회에 참가할 정도면 이미 어느 정도 토론을 해보았거나 아니면 최소한 관심이 있는 사람일텐데, 책마을 사람들에 비해 그리 커다란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우리 세대는 어느 면에서나 구박을 받아왔지만, 적어도 다른 나라의 학생들과 비교했을 때 그 명민함이 뒤떨어지지는 않는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앞으로 우리가 함께 경쟁하며 살아나아가야 할 세대가 그들이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심포지움의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간략히 각 토론회의 요지를 적는다.

  제 1 토론회 : 제 1토론회에서는 일미 동맹을 다룬다. 최근, 일미 동맹이 다루는 영역이 글로벌화했고, 관계강화가 이루어졌다지만, 일본과 미국이 구하는 이익, 그것을 위한 전략이 항상 같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 전략상의 차이가 생겨났을 때, 현재의 일본으로서는 어쩔 수 없이 대미추종을 하게 된다는 비판이 많다. 그때 일본이 일미동맹을 하나의 외교 도구로서 이용하고, 주체성을 가진 외교를 전개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토론한다.

  제 2토론회 : 제2 토론회에서는, 일본의 아시아 태평양 지역 외교에서 대두하는 중국에 초점을 맞춰 검토한다. 중국은 불투명한 부분이 많은 반면, 지역의 경제발전 및 지역협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서, 중국이 일본 및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있어 위협이 될 수 있는지를 검토한 위에,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 일본외교의 올바른 자세를 검토한다.

  제 3토론회 : 제 3토론회에서는, 국제안전보장에 있어서 일본의 역할을 검토한다. 걸프전에서 '수표 외교'라고 야유당하고, PKO 등으로 자위대를 파견하게 된 일본이지만, 현재, 테러의 출현에 의해 일본은 다시 국제안전보장의 새로운 과제를 향해 가지 않으면 안된다. "평화주의국가"로서, 자위대가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가능할까를 검토한 위에, 국제안전보장에 있어서 자위대의 일본의 "평화주의"를 생각한다.

  제 4토론회 : 제 4토론회에서는, 제 1토론회에서 제 3토론회까지의 내용에 입각해, 21세기에 있어서 일본외교의 방향성을 모색한다. 액터(Actor) 간의 이해관계가 다원적으로 얽혀 있는 현대의 복잡기괴한 국제사회. 그런 파란만장한 국제정치의 바다에서 익사하지 않기 위해, 일본은 금후, 국제사회 속에서 어떠한 역할을 담당해야하는 것인가. 본 토론회에서는, 일본외교의 강점과 약점, 복수의 외교지침 사이에서 생겨나는 모순 등을 검토한 위에, 21세기를 향한 일본외교의 신항로를 개척한다.


  토론회에서 무슨 얘기를 했는가를 구체적으로 적는 건 무리다. 토론회만으로 12시간(4토론회*3시간)에, 보고회를 준비하는 둘쨋날 밤에는 결론을 내기 위해 새벽까지 토론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일일이 적기보다는, 내가 어떤 점에서 인상을 받았고 어떤 게 충격으로 다가왔는지를 서술하는 편이 나을 듯 싶다.
  각 토론회의 요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일본외교는 기본적으로 '일미동맹'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그것은 전후부터 줄곧 지속되온 일본외교의 근간이며, 최소한 90년대 초까지는 일본외교의 거의 대부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랬던 것이, 공산권이 붕괴하고 중국의 경제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외교에도 관심을 쏟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실제로도 토론회에서 일미동맹 이야기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동아시아 지역 외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한국인인 내가 심포지움 내내 생각했던 것은, '한국'이라는 국가가 일본외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극히 작다는 점이었다. 참가자 중에 한국인이 한 명이라도 있었기에 한일 관계가 어느 정도 논의되었지만, 그것도 대부분 북한의 위협과 관련된 부분에 한정되어 있었다. 일본외교에서의 '한국'은, 내가 없었더라면 아마 완전히 논의에서 배제되었을 정도로 사소한 위치였다. 세계 경제가 재편되고 있는 시점에서 일본이 한국외교에 미칠 영향력은,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학부생의 토론이 학계 토론의 축소판이며, 사회 여론의 반영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는 충격이었다.
  이와는 정반대의 입장에서, 현재 일본외교가 가장 중요시하고 있는 대상은 무엇보다도 '중국'이라는 커다란 나라였다. 양안 문제(중국과 타이완의 문제) 역시, 중국이 위협이 될 것인가 그렇지 않을까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자유주의 국가의 하나인 타이완을 지켜야 한다는 공세적 측면에서가 아니라, 타이완이 점령당했을 경우 초래될 손해와, 그 후 중국과의 관계를 줄곧 논의했다는 얘기다. 일본은 이전의 '미국' 중심 일극 외교에서, '미/중'이라는 이극 외교로 탈바꿈하려는 듯이 보였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점은, 각국의 외교적 가치를 (물론 일본의 입장에서) 평가할 때의 태도였다. 타이완과 베트남은 현재 GDP에서 5배 이상 차이가 날 정도로, 경제력에서 비교가 안된다. 그러나 토론회에서 두 나라의 평가의 중심은, 현재의 경제력이 아니라 앞으로의 잠재력이었다. 타이완의 인구는 3천만 정도이지만, 베트남의 인구는 현재 7천만 정도이며 더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인구가 경쟁력이 될 앞으로의 사회에서 이런 동남아시아 국가를 중시할 필요가 있다, 라는 식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일본 국내의 문제에서는, 자위대와 '평화주의'의 문제가 가장 많이 거론됐다. 이른바 '평화헌법'을 개헌해야 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 하는 논의는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누구 하나 현재 자위대의 활동이 합헌인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나는 외국인의 입장에서 그 점을 지적하고, 그것이 일본외교에 대해 동아시아 각국이 느끼는 이중성의 원인이라고 이야기했다. 다들 공감하는 듯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얼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 바로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다. 어쩌면 이런 '애매함'은 일본외교의 약점이자 강점일지도 모른다.

  토론회 뒤의 보고회에는, 마지막 날 발표형식으로 각 분과회 당 5분 간 진행하고, 그 뒤에는 부스를 세워서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관람하고, 질문하는 형식이었다. 일본외교 분과회가 가장 많이 공격당한 부분은, 중국이 어째서 위협이 되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물론, 이런 질문은 대부분 중국인 참가자에게서 나왔다. 확실히 중국인은, 적어도 그 토론회에 참가한 대학생들은, 자신의 모국이 세계에 어떤 식으로 인식되고 있는지를 잘 모르고 있는 듯 했다.
  내가 이 점을 더욱 뼈저리게 인식한 건, 동아시아 분과회 부스에서 질문했을 때였다. 나는 전부터 한국과 중국의 역사교과서가 국가기관이 발행한 단일종인 것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그 점을 중국인 참가자에게 질문했던 것이다. 동아시아 분과회의 중국인 참가자는 두 명이었는데, 내 질문을 듣고 굉장히 열심히 설명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너무 장황하기에 중간에 자르고, "역사교과서가 여러 종이어야 한다는 건, 민주국가의 기본이라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묻자, 두 중국인 중 한 명이 "중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 공산주의 국가"라고 대답했다. 그 참가자들보다 오히려 내가 당황할 수밖에 없는 시점이었다.
  민주주의의 반대가 독재이며,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는 양립하는 개념이라는, 미소 냉전 시기 공산주의자가 열을 올려 설명했을 법한 이야기를, 현재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자본주의화 된 나라의 학생이 다시 한 번, 세계에 몇 안 남은 공산주의 국가 중 하나인 중국의 대학생에게 설명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다행히 다른 한 명은 국제정치를 전공한 덕분에 자기의 친구가 한 충격적인 발언을 서둘러 수습했다. 배고픈 어린아이에게 이런 저런 다양한 먹을 것을 주면 탈이 나듯이, 지금 중국에 민주적인 여러 제도는 필요하지만, 단계적으로 실시해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나는 나름대로 수긍했지만, 그 중국인 학생 둘은 그 뒤에도 내 쪽을 보며 수근거렸다, 라기보다는 분통을 터뜨렸다.

  심포지움 후의 얘기는 개인적인 일이 되기에, 별로 말할 것이 없다.


  심포지움에서 만난 많은 일본인들은, 한국의 젊은이들처럼 그렇게 막연히 어두운 전망만을 내놓지는 않았다. 그들은 일본이라는 나라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고, 토론을 통해 세상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어느 면으로 보나 그다지 좋지 않은 상황에 처한 나라에서 온 유학생은, 그저 씁쓸하게 박수쳐 줄 수밖에 없었다.
  반면, 일본인들에게서 내가 느낀 것은, 그들에게 타국을 이해하는 감수성이 근본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내가 양안 문제에 대해 짧은 시간 내에 흥미를 가지고 조사할 수 있었던 건, 그게 한국의 상황과 닮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가 만난 많은 일본인들에게는, 그 사람이 정치학과 학생이라 하더라도, 다른 나라의 정치상황을 그 나라의 관점에서 고려하고 판단하는 자세가 결여되어 있었다. 그들은 단지, 일본이 먼저 말을 걸면, 대화를 청하면, 돈을 주면(토론에서 중요한 안건 중의 하나가 일본의 ODA - 정부개발원조 - 자금 문제였다) 뭔가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평화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정치에 대해 거의 아무런 기대를 걸지 않는 나라는, 결국 정치를 통해 바꿀만한 것이 거의 없는 나라와 같다. 어쩌면 이건, 잘 사는 나라 사람들의 유물론적 한계일런지도 모른다.
  홋카이도보다 약간 더 클 뿐인 남한에서 나고 자란 내가, 희망을 보는 건 바로 이런 지점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쌓여 온 한국의 모든 폐해들이 한 순간에 폭발한 뒤의 잔해 속에서 성장했다. 여기에 우리의 절망이 있고 동시에 구원이 있다. 우리의 문제의식은 이런 상황 속에서 더 날카로워질 수 있고, 보다 더 단련될 수 있다. 우리는 적어도, 우리가 어떤 함정에 빠져 있는지 암중모색할 장을 가질 수 있었다. 그건 우리가 배불렀다면 결코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작년 7월 중순까지 자본론을 읽고 있었을 때의 문제의식과, 지금의 나의 문제의식은 기본적으로 바뀐 게 없다. 나는 여전히 '세상을 바꾸는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으며, 그 방법은 유물론적인 바탕 위에 서야 한다고 믿는다. 다만 그 방향성에 있어서는, 보다 다양한 방향과 방법들이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다. 일국 안에서의 방법이 아니라, 여러 나라들 간의 관계 속에서 찾아낼 수 있는 해법 같은. 이건 물론, 일본에 와서 다른 나라 사람들의 생각을 접하고 느끼면서 받은 영향이리라.
  우리 세대가 해야 할 일은, 이전 세대가 저질렀던 일들을 다시 반복하지 않으면서, '지속가능한 혁명'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섣불리 무언가를 결정하고 추진하기보다, 당장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그것을 행동에 옮기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가 각론 속에서 헤맬 게 아니라, 각자의 영역 안에서 해낼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해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서로를 비난하고 괴롭힐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지금 당장 세상을 뒤집어 엎을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각자가 서로의 안테나가 되어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 그리고 그게 우리 세대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를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건 내가 우리 세대들에게 보내는 하나의 발신이다. 다들 자기 자리에서, 죄수의 딜레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서로 답신을 주었으면 싶다. 전에도 말했듯이, 아무도 우리를 돕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도울 수밖에 없다.

  요즘 '자본'을 읽으면서 여러가지 고민을 했고 다른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 책은 이미 죽어버린 것이 아닌가?" 사실 그렇지는 않다. 요즘 월 스트리트에서 꽤 잘 나가는 게 '자본'이라고 한다. 최근 파이낸셜 타임즈에서는 '신 자본주의'를 특집 기사로 전하면서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을 인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자본'은 현재를 설명할 수 있는 책인가? 물론 그렇지는 않다. '자본' 이후에 수많은 사람들이 '자본'의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보완하려고 했다. 적어도 내가 읽어본 바로는, '자본'의 이론은 100% 완벽하게 현대의 현실을 설명해줄 수 없다. 그것은 시대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필멸자인 인간의 산물로서는(그것이 사상이나 분석이라 할지라도) 필연적인 것이다. 맑스는 우리 시대를 경험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결국, 나는 밑에 쓴 글로 대답을 대신할 수밖에 없다. 맑스의 저작이 단지 '사회학 서적'으로만 읽히지 않는 것은, 그가 철학적인 자세로 문제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가 현대의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싸워야 할 문제가 무엇인가'에 관한 실마리이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속속들이 해부해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일정 부분에서는 그러한 역할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그는 헤겔의 관점을 이어받아 인간 존재를 근본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탐구했고, 그것은 그의 저작 '자본'에 매우 잘 드러나 있다.
  만일 세상에 나온지 100년이 훨씬 지난 서적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설명해줄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면, 그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우리는 '국부론'을 그렇게 읽지 않으며, 아담 스미스의 주장에서 무엇이 틀렸는지를 이미 알고 있다. 그것은 맑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부정될 수 없는 신적 존재가 아니며, 그의 사상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다만 그가 말하는 것 중에 무엇이 우리에게 쓸모있는가를 찾으면 그만이다. 그것은 100년도 넘은 니체의 철학을 우리가 아직도 읽고 있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 무엇에 대항하여 싸워야 하는가 - 그것은 당시에도 지금도 유효한 질문이며, (100년이 됐든 1000년이 됐든) 그 질문에 대답하는 책만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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