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은 왜 계속 가난한가를 사회복지사와 논의하는 과정에서 29년 전 일이 떠올랐다. 가난한 환경에서 가난한 사람들과만 어울리며 성장한 사람들은 중산층 사람들에는 일상적인 일도 난생 처음 겪는 게 된다.
교육까지 짧으면 배운 사람에게는 일상적인 비유가 무슨 뜻인지를 모른다. 남들 보기에는 사소한 일이지만 당사자는 겪을 때마다 주눅이 든다. 이런 일이 거듭되면 다른 환경의 사람들과 섞이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게 된다. 가난한 사람이 가난에서 탈출하기 힘든 것은 이 때문이라고 서울 강서방화자활후견기관 사회복지사인 김원중씨는 말했다.[……]
- 서화숙, <고립과 지적 빈곤의 대물림>,『한국일보 2007년 2월 22일 30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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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인문학> 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이 책의 저자 얼 쇼리스는 언론인이자 사회비평가인데, 교도소에서 어느 여성 재소자와의 대화를 통해 깨달음을 얻고 하층민들을 위한 인문학 코스를 만들었다. 그것이 1995년 만들어진 '클레멘트 코스'이다. 이 발상은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고, 한국에서도 대한성공회 노숙인 다시 서기 지원센터가 그의 교육과정을 도입해 2005년부터 노숙인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는 성프란시스대를 운영하고 있다.
나는 애초에, 이 발상에 대해 굉장히 회의적인 입장에 서 있었다. 노숙인에게 무슨 인문학이며 학문인가, 차라리 빵을 하나 더 주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우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지금도 인문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의 밥그릇을 찾기조차 어려운 실정인데.
그런데 이 칼럼을 보면서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무엇을 시작한다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의 의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노숙인이나 하층민들의 고질적인 문제는, 그들이 무언가를 시작할 능력이 안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는 데에 있다. 기존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이나 확신은 내부에서 스스로 생겨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교육을 통해 길러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기존의 통념처럼 빈민들이 더 나은 생활을 하는 데에 방해가 되는 장벽은 단순히 '자본'에 있는 것만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중산층(우리나라의 비정상적 중산층이 아니라 통계적 중산층)의 생활양식이 낯설고, 그들이 사용하는 용어나 의식주 또한 다르다. 거기에서 오는 위화감과 격차는 그들을 주눅들게 만들고, 다시금 생활의 변화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여성 성공센터 W-ing의 박지영 사무국장은 이런 일화를 전한다. "노숙인이었던 우리 학생들이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란 말을 배웠어요. 한번은 학생들끼리 다툼이 생겼는데, 누군가가 욕을 하자 한 학생이 '언어는 존재의 집이잖아. 네가 욕하면 사람들이 너를 그런 사람으로밖에 안 보는 거야.'라고 하더군요. 그때 느꼈죠. 아, 배워야 하는구나."
이 일화에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하층민이 더 나은 생활을 위해 필요한 것이 단순히 물질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 계층이 다른 계층에 진입한다는 것은, 곧 그들이 다른 생활양식에 적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활양식은 물질적인 조건보다는 정신적인 조건에 의해 규정되는 측면이 더 강하기 때문에, 더 나은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활하고 일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정신의 재교육이 필수적이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 '위화감'과 '격차'라는 것을 과연 무엇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중산층인가 하층민인가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페라를 보기 위해서는 어떤 복장을 차려 입어야 하느냐, 또는 어떤 음식에 무슨 와인이 좋은가라는 문제에 무지한 것을 하층민들의 '위화감'과 '격차'라고 떠올리는 사람은 중산층이다. 빈민이 정말로 자신의 '신분'을 재확인하고 움츠러드는 경우는 대화 속에 튀어나오는 외래어, 대중적 뮤지컬 공연장에 들어갔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느냐의 문제, 레스토랑에 갔을 때 포크와 나이프를 어떻게 쥐느냐의 문제이다. 한국에는 의외로 자신들이 '하층민'이라고 착각하는 '중산층'이 꽤 많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들이 좀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봤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