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에 상대주의는 보편화되어 있다. 문화인류학에서 강조되기 시작한 이 관점은, 상대방과 나 사이의 차이가 곧바로 우열이나 도덕적 판단으로 전개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사회 문화 정치 경제 가릴 것 없이 스며들어, 이제는 하나의 상식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고백하자면, 나는 상대주의자가 아니다. 폭풍처럼 불어닥치는 사회 각 분야의 상대성 열풍이 나는 그다지 달갑지 않다. 가장 저질의 상대성은, 예로 들자면 인터넷의 토론(이라고도 할 수 없는 말싸움)같은 것이다. 세상 만사 상대적인 것이니, 너도 옳고 나도 옳고, 결국 그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식으로 결론이 나는 게 바로 그렇다. 양비양시론처럼 어떤 근거나 논리조차 내세우지 않는다. 절대적인 기준이 없으니 결국 모든 게 옳다는 단순한 판단. 이것은 내 죄책감이나 책임을 덜기 위한 것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어떤 절대적인 가치가 존재한다고 믿는가 하면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런 규준이 되는 가치는 애초에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칸트의 말대로, 그것은 '당위'가 아니라 '요청'되는 것이다. 인간이 가치판단을 할 때 필요한 규범은 누가 주는 게 아니라 자기요청에 의해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그것이 굳어지면 공동체의 규범이 되고 격률이 되고 성문법이 된다.
  가치 판단의 기준이 꼭 필요한 것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아무런 기준조차 존재하지 않을 때를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기존에 사회를 얽매었던 다양한 관습과 굴레들을 벗어버리는 것은 이 문제와 별개다. 인간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 행동에 대한 자기 자신의 가치판단은 뗄레야 뗄 수 없기 때문이다. 행동을 행동 그 자체로만 보고 평가할 수 있는 경우는 하나도 없다. 행동은 결과를 낳고, 그 결과로 인해 '무언가가' 변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살인의 경우. 이때 우리가 가치판단을 하지 않을 도리는 없다. 우리는 한 인간이 사회에서 소멸된 사태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판단을 내려야 한다. 그때 강요된 관습과 도덕률에 얽매이는 것은 거부해야 할지 모르나, 나 자신의 판단 근거까지 없어질 수는 없다. 그것이 칸트가 말한 '내 마음의 도덕률'의 참된 의미이다. 그는 습속을 내면화하라는 의미에서 말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판단 기준을 세우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것은 칸트 철학에서 정언명법으로 표현된다.
  이런 당연한 명제에서 출발해, 나는 지젝을 지지한다. 그가 스탈린을 말하는 것은 그저 농담이 아니다. 그는 분명히 어떤 '사회적 기준'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감히 아무도 말하려 하지 않았던 어떤 것이다. 포스트 모던과 가치 붕괴가 심화되면 될수록, 우리는 분명 무엇인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우리가 가치판단을 하기 위한 기준이다. 지젝의 예를 빌리면, '자율적인 포스트 모던 아버지'와 '엄격한 근대적 아버지'이다. 그리고 아이가 훨씬 더 깊은 고민을 하게 되는 경우는 후자가 아니라 전자이다. 물론 이런 예는 지젝의 발언을 그 맥락에서 살펴야 오해없이 이해될 수 있겠지만.
  어떤 일이든 시작될 때의 의도와 목표를 끝까지 지켜내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것은 목표에 도달하기 전에 사라지거나, 목표를 달성한 뒤 과대 팽창한다. 현대의 가치 붕괴는 후자에 가깝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신이 없으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고 말했는데, 이 시대는 그것의 별로 좋지 않는 변형으로 되어가고 있다. 근대의 구조를 무너뜨리기 위해 푸코를 필두로 한 포스트 모더니즘이 제기했던 문제의식은 충분히 고려되어야 하지만, 무의미한 논의로 바뀐 '가치판단에 대한 회의'는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정말 모든 것에 대한 판단기준이 없을 때 벌어질 일들을, 그들은 예상하지 못하는 것인가. 팔레스타인도 이스라엘도 모두 나쁘다고 말할 때, 미국의 신자유주의 정책과 그것에 반대하는 세력도 모두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말할 때, 그것이 현실에서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를, 정말 모르고 있는 것인가.

[……]가난한 사람은 왜 계속 가난한가를 사회복지사와 논의하는 과정에서 29년 전 일이 떠올랐다. 가난한 환경에서 가난한 사람들과만 어울리며 성장한 사람들은 중산층 사람들에는 일상적인 일도 난생 처음 겪는 게 된다.
  교육까지 짧으면 배운 사람에게는 일상적인 비유가 무슨 뜻인지를 모른다. 남들 보기에는 사소한 일이지만 당사자는 겪을 때마다 주눅이 든다. 이런 일이 거듭되면 다른 환경의 사람들과 섞이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게 된다. 가난한 사람이 가난에서 탈출하기 힘든 것은 이 때문이라고 서울 강서방화자활후견기관 사회복지사인 김원중씨는 말했다.[……]

- 서화숙, <고립과 지적 빈곤의 대물림>,『한국일보 2007년 2월 22일 30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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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의 인문학> 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이 책의 저자 얼 쇼리스는 언론인이자 사회비평가인데, 교도소에서 어느 여성 재소자와의 대화를 통해 깨달음을 얻고 하층민들을 위한 인문학 코스를 만들었다. 그것이 1995년 만들어진 '클레멘트 코스'이다. 이 발상은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고, 한국에서도 대한성공회 노숙인 다시 서기 지원센터가 그의 교육과정을 도입해 2005년부터 노숙인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는 성프란시스대를 운영하고 있다.
  나는 애초에, 이 발상에 대해 굉장히 회의적인 입장에 서 있었다. 노숙인에게 무슨 인문학이며 학문인가, 차라리 빵을 하나 더 주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우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지금도 인문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의 밥그릇을 찾기조차 어려운 실정인데.
  그런데 이 칼럼을 보면서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무엇을 시작한다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의 의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노숙인이나 하층민들의 고질적인 문제는, 그들이 무언가를 시작할 능력이 안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는 데에 있다. 기존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이나 확신은 내부에서 스스로 생겨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교육을 통해 길러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기존의 통념처럼 빈민들이 더 나은 생활을 하는 데에 방해가 되는 장벽은 단순히 '자본'에 있는 것만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중산층(우리나라의 비정상적 중산층이 아니라 통계적 중산층)의 생활양식이 낯설고, 그들이 사용하는 용어나 의식주 또한 다르다. 거기에서 오는 위화감과 격차는 그들을 주눅들게 만들고, 다시금 생활의 변화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여성 성공센터 W-ing의  박지영 사무국장은 이런 일화를 전한다. "노숙인이었던 우리 학생들이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란 말을 배웠어요. 한번은 학생들끼리 다툼이 생겼는데, 누군가가 욕을 하자 한 학생이 '언어는 존재의 집이잖아. 네가 욕하면 사람들이 너를 그런 사람으로밖에 안 보는 거야.'라고 하더군요. 그때 느꼈죠. 아, 배워야 하는구나."
  이 일화에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하층민이 더 나은 생활을 위해 필요한 것이 단순히 물질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 계층이 다른 계층에 진입한다는 것은, 곧 그들이 다른 생활양식에 적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활양식은 물질적인 조건보다는 정신적인 조건에 의해 규정되는 측면이 더 강하기 때문에, 더 나은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활하고 일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정신의 재교육이 필수적이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 '위화감'과 '격차'라는 것을 과연 무엇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중산층인가 하층민인가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페라를 보기 위해서는 어떤 복장을 차려 입어야 하느냐, 또는 어떤 음식에 무슨 와인이 좋은가라는 문제에 무지한 것을 하층민들의 '위화감'과 '격차'라고 떠올리는 사람은 중산층이다. 빈민이 정말로 자신의 '신분'을 재확인하고 움츠러드는 경우는 대화 속에 튀어나오는 외래어, 대중적 뮤지컬 공연장에 들어갔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느냐의 문제, 레스토랑에 갔을 때 포크와 나이프를 어떻게 쥐느냐의 문제이다. 한국에는 의외로 자신들이 '하층민'이라고 착각하는 '중산층'이 꽤 많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들이 좀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봤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독거초등학생



나는 그 소녀를 독거초등학생이라 부르련다
신문지상과 방송에 사회문제로 오르내리는
독거노인이라는 말을 본따서

소녀는 여덟 살 초등학교 1학년
단칸 셋방에 할머니와 둘이 산다
병중이던 할머니 2개월 전 돌아갔다
엄마는 집 나간 지 오래
아버지는 5년째 교도소 수감중
할머니 돌아가자마자 동사무소에서는
매달 지급해주던 생계보조비를 끊었다
생활보호대상자가 아니라는 것
보호자가 어쨌든 생존해 있으므로
소녀는 자격이 없다는 것
법이 그렇다는 것

그러든지 말든지, 소녀는 그런 따위는 몰라. 다만 이제 자신이 어엿한 독거인이 됐다는 것. 이 광막한 우주에 홀로 거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됐다는 것은 아는 것 같다. 보라.

밥 짓는다
바가지에 쌀 씻어 밥솥에 안친다
방 청소한다
빗자루로 쓸고 쓰레받기로 받는다
옷 빨래는 대야에 넣고
비누질 찰싹찰싹
이웃이 넣어주고 간 밑반찬에
저녁밥 올려 먹고
깜깜해져 오네 불 켠다
형광불빛이 깜박깜박 깜박깜박 깜박, 다섯 번 만에 들어온다
엎드려 공책 편다
연필 꼭꼭 눌러 쓰기 숙제를 한다 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어머니를 책가방 속에 잘 챙겨넣는다
이부자리 편다 베개 올려놓고
마지막 형광등 스위치를 탁, 내린다
불이 꺼지고
눈이 꺼지고
몸이 꺼져……

……아, 꺼져요. 하지만 나는 소녀가 무엇보다 형광등 불 켜고 끄는 일을 좋아할 거라고 상상한다. 쉽고, 무슨 놀이 같기도 하고. 탁 내리면 환했었는데 얼른 깜깜해지고. 톡 올리면 깜박깜박 다섯 번이나 술래놀이처럼 하다가 화화화 화안해지고.
저 멀리 장수에서 산다는 소녀의 일을 신문 하단 몇 줄 기사에서 본 후로, 그곳으로부터 흔들려 오는 빛과 소리를 자꾸 느낀다. 몇 차례 곁인 듯 파고드는 가늘은 그것. 빛과 소리. 몇 날을 번갈아 왔다갔다하더니 어느 하룻날은 둘이 함께 왔다.

소리 - 플라스틱통 같은 데서, 플라스틱 컵일지, 쌀을 한 컵 또는 두 컵 떠내는 소리. 역시 플라스틱 바가지일지, 떠낸 쌀을 담아 물 받는 소리. 조물조물 씻는 소리. 마지막 물 속 쌀알이 차륵이는 소리.
빛 - 파르르파르르 파르르파르르 파르르, 다섯 번이나 떨리다 들어오는 소녀의 방 형광들불. 펼친 공책 위에 새하얗게 깔리는 형광불빛. 형광불빛의 잔디밭. 잔디밭 위에 엎드린 소녀. 꽃 나무 나비가 모이는 공책 칸칸마다 또 파르라니 쏟아지는 잔디.

그런데, 독거노인이라고 들었을 때는 밭은기침, 세발 수발, 오물 수발, 간병, 말벗 등의 여러 말이 으레 떠올라와 주는데, 독거초등학생이라고 불러봐 보니 아무, 아무 떠오르는 게 없다. 독거초등학생이라는 이름은 사실은 아무 생각도 할수없게 하는 이름인가 보다. 생각이 막히는, 막혀버리는 그런 이름은 본따 짓지도 부르지도 말아야 하는가 보다.

나는 그 소녀의 독거초등학생이란 이름을 지우며 마지막으로 뒤돌아보았다. 그딴 이름 지워지자마자 소녀는 저 아득한 우주 꽃씨로 잠들었다. 우주 어둠이 내려와 펼쳐진 채인 소녀의 알림장 보호자 확인란에 별을 박았다. 빛나는 우주 사인을 했다. 소녀 잠들기 직전 소녀의 꽃손을 빌어 쥐고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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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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