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잃어버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다시 접촉하는 주도권을 그에게 맡겨두는 것이다. 그러면 머지않아 그가 꼼짝도 하지 않게 되는 날이 오는 것이다.[……]

- 미셸 트루니에,『외면일기』중에서

--------------------
  친구란 과연 어떤 존재일까. 예전에 한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대해 쓴 책에서도 읽었듯이, 한국의 '친구' 개념은 모호하고 폭이 넓다. 영어의 friend의 개념과는 많이 다르다. 일본의 知り合い(아는 사람)나 親友(절친한 사람)의 개념과도 또 다르다. 友達의 개념과 조금 비슷할지는 몰라도, 일본인의 상식선에서는 知り合い에 속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에서는 '친구'로 불리는 경우가 참 많다.
  그래서 가끔 나 같이 쓸데없는 것에 집착하는 사람은 혼란에 빠질 때가 있다. 이 사람은 과연 어떤 의미에서 나의 '친구'인 걸까. 그런 걸 생각하다 보면 모든 게 의심스러워지고야 만다. 인간관계 전반이 미심쩍은 어떤 것으로 변한다. 심지어는 가족관계의 '친밀성'에 대해서도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의심을 품어보는 형편이니, 따로 말할 게 못되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폭넓고 느슨한 한국식 '친구' 개념은, 미셸 트루니에의 저 경구가 적용되었을 때 그대로의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저 '주도권 넘겨주기'가 강제적으로 행해졌을 때 특히 그렇다. 본인이 어쩔 수 없는 환경에 처해져 있을 때, '그(혹은 그녀)가 꼼짝도 하지 않게 되는 날'이 자주 발생하는 것이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이, 저 경구는 반대의 의미도 가진다. 친구를 사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접촉의 주도권을 스스로가 쥐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데도 꼼짝도 하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다. 결국 언제나, 문제의 해결은 스스로가 쥐고 있는 것. 과연 그렇다.

주말의 풍경

일상만담 2006/06/25 00:07
  1
  오늘은 하루종일 불안감에 사로잡혀 지냈다.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 이대로 있어서는 안된다는 신경증적인 증상. 가슴은 자꾸만 답답해지고, 머릿속은 실타래가 얽힌 것처럼 복잡하기만 하다.
  아무 생각없이 집에 오면 씻고 자기 바쁜 평일의 생활에서 하지 못했던 고민들을, 주말이 되면 몰아서 하게 되는 것만 같다. 나는 이대로 살아도 되는 걸까. 과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2
  그래서, 가끔은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사람은 필요할 때 없다는 것도 느낀다. 이건 물론 다른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나의' 문제다. 그리고 그 문제의 무게도 어디까지나 내 것이다.


  추기
  조용하면 도지는 이 미친 정신병. 제대 후 나라는 인간이 스스로 정리될 때까지 아무도 안 만나기로 했고 또 거의 완벽하게 그것을 실천한 결과가, 요즘에서야 드러나고 있다. 너는 이래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토마스 칼라일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돈은 필요하다. 그것도 어리석은 사람에게 어리석은 대접을 받지 않기 위해 필요하다."
  인생을 살다 보면 한순간 공감하게 되는 말들이 있는데, 저 말은 특히나 자주 공감하게 된다. 제대하고 나서는 더욱 그렇다. 돈은 자기 삶의 영위를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어리석은 대접을 받지 않으려면 반드시 필요하다. 200년 전 사람도 말했을 정도니, 어쩌면 굳이 입밖으로 낼 필요가 없는 진리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저 말에 공감하게 되는 순간들은, 전부 불쾌한 순간들 뿐이다. 내 생각에 '어리석은 대접'을 받았기에, 더더욱 공감하게 되는건지도 모르겠다. 나의 유년시절과 깊은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내가 지금 알 수 있는 건, 분노와 증오심도 인간을 움직이는 동력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 일은 절대로 잊지 않겠다.
◀ PREV : [1] : .. [8] : [9] : [10] : [11] : [12] : [13]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