くらし
생활

石垣りん
이시가키 린


食わずには生きてゆけない。
먹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メシを
밥을
野菜を
야채를
肉を
고기를
空気を
공기를
光を
빛을
水を
물을
親を
부모를
きようだいを
형제를
師を
스승을
金もこころも
돈도 마음도
食わずには生きてこれなかった。
먹지 않고는 살아올 수 없었다.
ふくれた腹をかかえ
부른 배를 안고
口をぬぐえば
입을 닦으면
台所に散らばっている
부엌에 흩어져 있는
にんじんのしつぽ
당근의 끄트머리
鳥の骨
새의 뼈
父のはらわた
아버지의 창자
四十の日暮れ
나이 사십의 황혼녘
私の目にはじめてあふれるの獸の涙。
내 눈에 비로소 넘치는 짐승의 눈물.


원문 :『일본名詩選』,김희보 편저, 종로서적, 1993
번역 : 자가번역

[……]전후 최초의 수상은 황족인 히가시 쿠니나루히코[東久邇稔彦]인데, 그는 수상으로서의 첫 라디오 방송에서 '일억 총참회'를 주장했다. 그것은 전쟁의 책임을 일부 지도자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전국민이 평등하게 짊어지고 반성하자는 것이었다.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최고 지도자의 책임을 전혀 묻지 않은 상태에서 '국민'의 책임을 물을 수가 있을까? 전후 도쿄 재판에서 전쟁범죄의 책임을 추궁당한 군인과 정치가 대부분은 상관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변명했다. 그것을 거슬러 올라가면 모든 명령이 천황의 이름으로 내려졌다는 것은 명백하다. 하지만 그 천황이 면책되었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결국 누구도 책임질 사람은 없다. 모두가 피해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 가라타니 고진,『윤리 21』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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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각 언론매체에서 크게 보도한 고(故) 히로히토(裕仁) 천황의 메모 내용을 오늘 보았다. 기사를 읽고, 또 메모의 내용을 읽고 떠오른 것은 호사카 유우지 교수가 2002년 발간한『일본에게 절대 당하지 마라』라는 책의 한 구절이었다. 책이 내 수중에 있지 않기에 정확한 인용을 하기는 어렵지만, 히로히토 천황이 생전에 일본의 전쟁책임에 대해 줄곧 이야기하고는 했었다는 내용이었다. 호사카 교수는 여기에 덧붙여, 이런 천황의 발언을 토대로 '전쟁 당시의 천황의 태도와 책임'을 깊이 연구한다면 한일 양국간의 문제 해결에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거라 보았다.

  그 이야기가 떠오른 이유는, 누가 보아도 명백한 연관성이 있기도 하지만, 좀 더 주의해야 할 점이 있지 않을까 염려되어서이다. 전후 일본이 지금에 이르러 천황의 상징적인 의미와 실제적인 영향력이 많이 줄어들었다고는 해도, 아직까지 일본 국민들에 있어 정신적으로 커다란 위치를 차지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특히 일본 우익들에게 있어서 히로히토 천황(물론 그들은 쇼와昭和 천황이라는 명칭을 더 좋아한다)은 절대적인 존재이다. 그런 존재가 A급 전범의 합사 때문에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거부했다는 사실은, 당연히 타격이 되겠지만 반대의 영향을 줄지도 모른다.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이, 전후 일본의 전쟁책임론은 주로 '일억총참회' 같은 형식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애초에 도쿄전범재판에서 천황을 면책시켰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다. 이번 메모 건과 같은 사건 역시 그런 의미에서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히로히토 천황이 전범의 합사를 반대했든 그렇지 않든, 기본적으로 그가 전쟁에 깊숙이 관여했고 국가원수의 자리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끼쳤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의 전쟁에 대한 책임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 사실을 분명히 하지 않고 흐지부지하게 넘어갈 경우, 천황의 전쟁책임 문제가 회피되는 것은 물론이고 A급 전범에게만 책임이 전가되는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그럴 경우 천황제의 문제점이 드러나기보다는 덮어지게 된다. 그것은 진정한 해결이 될 수 없다. 메모 건으로 인해 히로히토 천황의 생전 발언(주로 전쟁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다는 의미의)에 대한 증언들이 속속 나오고 있는 모양인데, 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주의를 필요로 한다. 신중하고 치밀한 일본인들을 대할 때는 우리 역시 철저하게 모든 면에 대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은 이용당할 수밖에 없다.


  덧붙여서, 천황(天皇, てんのう)과 일왕(日王)의 용어 문제에 대하여. 한국언론은 일왕이라는 용어를 고집하고 있는데, 일부에서는 제정 러시아의 통치자를 '짜르'라고 부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하며 용어 사용에 별다른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내 생각은 조금 다른데, 우선 '천황'이란 용어는 전전(戰前)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고 현재에도 분명히 사용되는 용어다. 현실적으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짜르'나 '칸(汗)'처럼 이미 사멸되어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용어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 '천황'이란 용어의 사용에는 분명한 주의를 요한다.
  그러나 천황이 '상징적인' 존재이고 커다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게 현실인 이상, 굳이 '천황'이라는 용어에 너무 심각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외교적인 관례를 보았을 때도 그렇다. 또한 '天皇'이 일부 한국인들이 해석하는대로 '하늘의 황제=전세계의 지배자=세계 정복의 야욕(?)'을 드러내는 칭호라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다. '천황'의 명칭은 일본에서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칭호로서, 정치·사회·종교적으로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왕'이라고 번역하기보다는 '천황'으로 써주면서 그 속에 담긴 의미와 역사적인 맥락을 잊지 않는 것이 올바른 자세라고 본다.

김수영

일상만담 2006/07/17 12:34
  며칠 전에 친구에게 선물해주기 위해 산『김수영 전집 2-산문』의 개정판이 도착했다. 내가 제본이 떨어질 정도로 읽었던 건 개정 이전의 것이었기 때문에 한번 훑어보았다. 개정판에 새로 추가된 글이 없었다면 아마 훑어보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읽지 않은 글들이 있었기에 선물용으로 구입한 책을 들춰본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선물받을 사람도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
  개정판에서 바뀐 것은 새로 실린 글만이 아니다. 원고를 현재의 맞춤법에 맞추어 쓰고, 한자를 한글 뒤에 괄호로 병기했다. 나로서는 한자를 병기한 개정판보다는 그대로 써버린 예전 판본이 심정적으로 더 와닿지 않나 생각하지만, 우리 세대가 쉬이 읽기 어렵다는 점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튼튼한 하드커버에 새로운 글도 실려 있으니 나도 한 권 장만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2003년에 첫출간되었으니 이렇게 호들갑 떨 일도 아니지만.
  새로 읽은 글들은 역시 김수영의 글이었다. 도서관 구석에 처박힌 너덜너덜한 옛 신문에, 저자의 이름도 지워진 채 실려있다 하더라도 그의 글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김수영의 냄새를 폴폴 풍기고 있었다. 다시 훑어보면서 떠오른 사람은, 김수영이 아니라 장정일이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약간의 사연이 - 사연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간단한 - 있다.

  예전에 어느 글에서도 썼는데, 장정일의 에세이에는 김수영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거절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에게 있어 김수영에 대한 글을 쓴다는 건 30분을 요하는 작업이다.

  10분 동안 창밖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운다.
  5분 동안 손을 씻는다.
  15분 안에 김수영에 대한 글을 써 내려간다.

  나는 이 글을 읽고나서 줄곧, 장정일은 김수영이 아니라 다른 누구에 대해서든 '30분 안에 쓸 수 있을 정도로 잘 알지 못한 채' 글을 쓰는 것이 두려워서 청탁을 거절했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늘 개정판에 새로 실린 글들을 읽고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그게 아니었다. 그는 김수영에 대한 글이었기 때문에 청탁을 거절한 것이다. 장정일에게는 아마도, 김수영에 대한 극도의 애정과 같은 것이 있었으리라. 30분만에 쓸 수 있을 정도로 그를 잘 알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30분만에 써버릴 수 없는 그런 애정이. 그래서 그 청탁을 애써 거절한 것이리라. 김규항이『신약성서』와 김수영의 산문집을 (그에게 있어) 동등한 위치에 놓는 심정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렇다, 김수영은 아직도 우리 시대의 불꽃이다. 그는 아직도 타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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