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잃어버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다시 접촉하는 주도권을 그에게 맡겨두는 것이다. 그러면 머지않아 그가 꼼짝도 하지 않게 되는 날이 오는 것이다.[……]

- 미셸 트루니에,『외면일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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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란 과연 어떤 존재일까. 예전에 한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대해 쓴 책에서도 읽었듯이, 한국의 '친구' 개념은 모호하고 폭이 넓다. 영어의 friend의 개념과는 많이 다르다. 일본의 知り合い(아는 사람)나 親友(절친한 사람)의 개념과도 또 다르다. 友達의 개념과 조금 비슷할지는 몰라도, 일본인의 상식선에서는 知り合い에 속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에서는 '친구'로 불리는 경우가 참 많다.
  그래서 가끔 나 같이 쓸데없는 것에 집착하는 사람은 혼란에 빠질 때가 있다. 이 사람은 과연 어떤 의미에서 나의 '친구'인 걸까. 그런 걸 생각하다 보면 모든 게 의심스러워지고야 만다. 인간관계 전반이 미심쩍은 어떤 것으로 변한다. 심지어는 가족관계의 '친밀성'에 대해서도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의심을 품어보는 형편이니, 따로 말할 게 못되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폭넓고 느슨한 한국식 '친구' 개념은, 미셸 트루니에의 저 경구가 적용되었을 때 그대로의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저 '주도권 넘겨주기'가 강제적으로 행해졌을 때 특히 그렇다. 본인이 어쩔 수 없는 환경에 처해져 있을 때, '그(혹은 그녀)가 꼼짝도 하지 않게 되는 날'이 자주 발생하는 것이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이, 저 경구는 반대의 의미도 가진다. 친구를 사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접촉의 주도권을 스스로가 쥐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데도 꼼짝도 하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다. 결국 언제나, 문제의 해결은 스스로가 쥐고 있는 것. 과연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