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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6/08 글쓰기의 영도(零度) (4)
[……]논객의 발언은 기술적(descriptive)이 아니라, 규범적(normative)이다. 윤리학에 '공약의 부담'이라는 게 있어, 규범적 발언을 하는 이는 그 말을 지킬 책임을 먼저 자신에게 지워야 한다. "약속을 적게 할수록 더 많이 지킬 수 있다"는 과학의 윤리는 동시에 논객의 윤리, 하지만 논객은 과학자보다 불행하여 글을 쓸 때마다 약속을 해야 한다. 말과 글을 쏟아낼수록 글쟁이는 제 말로 제 몸을 옭아매게 되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숨이 막히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흔히 독자는 글을 보고 필자의 인격을 추정한다. 하지만 글을 쓰는 인간과 삶을 사는 인간은 다르다. 글쓸 때의 인간은 '이상적 주체'가 되지만, 원고료를 챙기는 글쟁이는 지극히 '현실적인 주체'다(종종 글쓴이를 직접 보고 나서 독자들이 글에서 얻은 아우라가 무너지는 체험을 하는 건 이 때문이다). 글쟁이는 자신의 비루한 현실과 글을 쓸 때에 연기하는 이상의 괴리에 역겨움을 느끼다가 결국 자신을 혐오하게 된다. 바로 이때가 더 이상 글을 쓰는 게 불가능해지는 글쓰기의 영도(零度). 지금 그 제로 디그리에 와 있다. 그동안 이곳저곳에 셀 수 없이 많은 말과 글을 뿌리며 살아왔다. 할 수 있는 모든 말들을 다 토해놓고, 더 토할 게 없어 위산까지 토해놓고, 그것도 모자라 몸 안의 기관을 증발시켜 스프레이처럼 입으로 뿜어내어 마침내 존재를 허공으로 날려버린 느낌이다.[……] (밑줄:인용자)


- 진중권,『씨네 21』555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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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킬 수 없는 말을 한 인간은 얼마나 불행한가. 그는 스스로에게 부여한 책임을 완수하지 못했기에 불행하다.
  지난 2년의 군생활 동안 진중권 만큼의 엄청난 글은 아닐지라도, 나 역시 규범적인 - 즉 책임져야 할 - 글쓰기를 했다. 그것들은 나 자신과의 약속이었으며, 동시에 스스로에게 부여한 과제였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은 나를 목졸라갔다. 나는 지키지도 못할 말들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의문은 나를 집요하게 따라다녔다. 나는 전역하기 두 달 전부터 글을 쓸 수가 없었다. 더 이상의 거짓말은 할 수 없었다.
  어째서 인간은 지킬 수 없는 글이나 말을 내뱉게 되는 걸까. 그건 물론, 글쓰기의 주체와 삶의 주체가 같으면서도 다른 인간이기 때문이다. 두 가지는 절대로 일치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잠시나마도 완벽하게 일치하는 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까지 생각한다. 글은 고정된 것이고 삶은 변화한다. 그것도 일분 일초 단위를 뛰어넘어 쉴새없이 변화한다. 작은 일로도 인간의 마음과 생각은 바뀌고, 그때의 인간은 이미 그 전의 '글쓰기 주체'와는 다른 인간이 된다. 넘을 수 없는 벽이다.
  글쓴이와 '글'과, 살아가는 사람의 '삶'의 괴리를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필연적인 것이라고 아무리 세뇌해도 그 분열은 자기혐오를 만든다. 합리화도 한 두 번이고, 분열-통합의 반복도 정도가 있다. 자신의 글을 보고 삶과의 괴리에 구토가 치밀어오르는 지경이 되면 더 이상 글같은 건 쓸 수 없게 된다. 제로 디그리. 막장이다.
  입을 다물고, 펜을 넣어둔 채 조용히 사는 것이 가장 괜찮은 삶의 방식인지도 모른다. 글이나 사상의 완벽한 실천으로서의 인간은 존재하지 않고, 그런 조건 하에서는 차라리 글과 사상을 버린 채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실천에나 힘쓰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지막 질문은 끝까지 나를 붙잡는다. 그렇다면 글은 왜 쓰는가? 아니 그 이전에, 어째서 필요한가? 너는 무엇 때문에 생각하고 있는가? 왜 살아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