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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8/23 전두환의 효용성에 대하여 (2)

[……]우리는 이제 며칠이면 자리에서 물러나실 전두환 대통령에게 심심한 감사와 존경을 표해야 할 것이다. 그분을 때려죽일 생각 말고 그분이 사지 뻗고 편안히 이 땅에서 사실 수 있도록 대접해드려야 할 것이다. 그분의 노고를 치하하며 그분이 이땅에서 저지르신 일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가를 똑똑히 깨달으실 때까지 이 땅에서 사시도록 해드려야 할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이 한국의 역사에서 달성한 매우 위대한 업적이 있다. 그것은 바로 대통령의 신화를 깨주신 것이다. 대통령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다. 무슨 이승만 박사님이나 장면 박사님이나 김구 선생님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아무나 할 수 있는 것, 어떤 무지한 인간이라 할지라도(논리적 가설), 어떤 추잡한 인격의 소유자라 할지라도(이것도 논리적 가설)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대통령이라는 것을 국민에게 계몽시켜주시는 위대한 업적을 달성하신 것이다. 이것은 단군 이래 어떠한 인간도 우리 민족에게 가르쳐주지 못한 것이며, 문자 그대로 세종대왕이 이룩한 업적보다 더 혁혁한 업적인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기념비적 전 대통령의 동상을 세워야 할 것이다. 사천만의 성금으로 내 고향 천안 독립기념관 앞에![……]

- 김용옥,『새 츈향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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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다음에서는 만화가 강풀이 '26년'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하고 있다. 제목을 보고 알아차린 분들도 있겠지만, 이 만화는 1980년 광주의 일을 스토리의 출발로 삼고 있다.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 희생된 네 사람의 아들딸들과 다른 두 사람이, 26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 전두환의 암살을 계획한다는 줄거리이다. 아직 완결되지는 않았다(보지 않은 사람은 꼭 보라고 권하고 싶다).
  다음 연재 코너에 가보면 알겠지만 만화 내용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압도적 다수가 만화의 내용에 대해 공감하는 반면, 소수의 몇몇은 명예훼손까지 들먹인다. 나는 그곳에서 '전사모(전두환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라는 게 우리나라에 존재한다는 걸, 그리고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다.
  살아있는 사람에 대한 '암살'을 소재로 한 창작물이, 그것이 만화가 됐든 무엇이 됐든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그 '암살'이라는 것이 어떤 형태를 띠고 어떤 정당성을 가지느냐에 따라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지, 현존하는 인물에 대한 '암살'을 소재로 창작하는 것에 대해 원천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원칙적으로, 창작의 소재에 제한을 가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전두환의 암살을 소재로 만화를 연재하는 강풀을 지지한다. 전두환이 죽고 나서 이런 만화가 연재되었다면 별 논란이 없었겠지만 그와 더불어 의미도 사라졌을 것이다. 쿤데라가 말했듯이, 권력에 대한 민중들의 싸움이란 결국 망각에 대한 기억의 싸움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끈질기게 기억하지 않으면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무고한 시민들을 살해하고 수천억 원대의 비자금을 챙기고도 뻔뻔히 살아남아 있는 그는, 어쩌면 우리나라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너무도 쉽게 독재자, 그것도 보통 독재자가 아닌 독재자를 '용서'하고 마는 나라. 그 '용서'받은 독재자가 백주대낮을 활보하며 '힘있게' 지낼 수 있는 나라. 우리의 정치적 성숙도를 보여주는 좌표는 딱 그 수준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김용옥의 말을 듣고 우리는 통쾌해 할 수 있지만, 그런 비꼼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법적·정치적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지금, 문화계마저 손을 놓아서는 안 된다. 1987년 이후 19년, 이제 겨우 강풀이라는 만화가가 '창작에 의한 역사적 처벌'의 첫발을 내밀었다. 우리 문학계는 입버릇처럼 위기라고 떠들어대지만, 그 위기의 원천은 '기억하지 않는' 그들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덧붙여서 한마디. 전두환의 재테크 방법과 생활방식을 매뉴얼로 만들어 전 국민에게 배포할 것을 정부에 건의한다. 그 매뉴얼을 통해 우리는, 29만원을 가지고 골프도 치며 잘 사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쩌면 극빈층이 전부 사라지는 지상 최고의 낙원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