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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일상만담 2006/07/17 12:34
  며칠 전에 친구에게 선물해주기 위해 산『김수영 전집 2-산문』의 개정판이 도착했다. 내가 제본이 떨어질 정도로 읽었던 건 개정 이전의 것이었기 때문에 한번 훑어보았다. 개정판에 새로 추가된 글이 없었다면 아마 훑어보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읽지 않은 글들이 있었기에 선물용으로 구입한 책을 들춰본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선물받을 사람도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
  개정판에서 바뀐 것은 새로 실린 글만이 아니다. 원고를 현재의 맞춤법에 맞추어 쓰고, 한자를 한글 뒤에 괄호로 병기했다. 나로서는 한자를 병기한 개정판보다는 그대로 써버린 예전 판본이 심정적으로 더 와닿지 않나 생각하지만, 우리 세대가 쉬이 읽기 어렵다는 점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튼튼한 하드커버에 새로운 글도 실려 있으니 나도 한 권 장만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2003년에 첫출간되었으니 이렇게 호들갑 떨 일도 아니지만.
  새로 읽은 글들은 역시 김수영의 글이었다. 도서관 구석에 처박힌 너덜너덜한 옛 신문에, 저자의 이름도 지워진 채 실려있다 하더라도 그의 글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김수영의 냄새를 폴폴 풍기고 있었다. 다시 훑어보면서 떠오른 사람은, 김수영이 아니라 장정일이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약간의 사연이 - 사연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간단한 - 있다.

  예전에 어느 글에서도 썼는데, 장정일의 에세이에는 김수영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거절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에게 있어 김수영에 대한 글을 쓴다는 건 30분을 요하는 작업이다.

  10분 동안 창밖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운다.
  5분 동안 손을 씻는다.
  15분 안에 김수영에 대한 글을 써 내려간다.

  나는 이 글을 읽고나서 줄곧, 장정일은 김수영이 아니라 다른 누구에 대해서든 '30분 안에 쓸 수 있을 정도로 잘 알지 못한 채' 글을 쓰는 것이 두려워서 청탁을 거절했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늘 개정판에 새로 실린 글들을 읽고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그게 아니었다. 그는 김수영에 대한 글이었기 때문에 청탁을 거절한 것이다. 장정일에게는 아마도, 김수영에 대한 극도의 애정과 같은 것이 있었으리라. 30분만에 쓸 수 있을 정도로 그를 잘 알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30분만에 써버릴 수 없는 그런 애정이. 그래서 그 청탁을 애써 거절한 것이리라. 김규항이『신약성서』와 김수영의 산문집을 (그에게 있어) 동등한 위치에 놓는 심정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렇다, 김수영은 아직도 우리 시대의 불꽃이다. 그는 아직도 타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