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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8/29 비평에 대해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 (2)

[……]나는 자신에 관한 비평이란 걸 전혀 읽지 않는 인간이다. 그래도 간혹 기분이 내켜 읽거나 하면 '이건 좀 이상하지 않은가'하고 생각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사실을 오해하고 있는 경우도 있고, 명명백백하게 빗나간 추측도 있고, 노골적인 개인 공격도 있고, 책을 마지막까지 읽지도 않고 썼다고밖에 여겨지지 않는, 따라서 무슨 소린지도 모를 비평이 있다.
  하지만 그런 모든 사정을 고려한다 해도, 작가가 비평을 비평하거나, 거기에 대해 어떤 형식으로든 변명을 하거나 하는 것은 당치않은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쁜 비평이라고 하는 것은, 말똥이 듬뿍 들어차 있는 오두막과 흡사하다. 만약 우리가 길을 걷고 있을 때 그런 오두막과 맞닥뜨리게 된다면, 서둘러 지나가 버리는 게 최상의 대응책이다. '왜 이렇게 냄새가 나지'라는 등의 의문을 품어서는 안된다. 말똥이란 원래 냄새가 나는 것이고, 오두막의 문을 열기라도 했다가는 더욱 냄새가 진동할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무라카미 아사히도의 역습』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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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나는 비평에 대해 잘 모르고, 말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다. 그러나 내가 비평에 대해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이 한 가지 있다. 비평가들은 자신이 비평하는 대상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비평하는 작품을 쓴 작가가 정말로 누구인지도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그게 가능하냐고 말하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이다. 실례가 있다.

  리처드 바크만Richard Bachman이라는 작가는 비운의 생을 살았던 작가다. 그의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지만, 1977년『분노Rage』라는 작품을 발표한 뒤로 한물 간 스티븐 킹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기대주라는 찬사를 받았다. 당시 스티븐 킹은 평론가들로부터 통속적인 대중소설가로 대접받던 중이었다.
  리처드 바크만에게는 아내와 아들 하나가 있었는데, 아들은 스티븐 킹의 소설에 나오는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우물에 빠져 죽었다. 그는 슬픔을 이겨내기 어려웠지만 더 큰 고난이 닥쳤다. 1982년에 그의 뇌에서 종양이 발견되어 수술을 받은 것이다. 스티븐 킹은 자신과 비교되는 신인작가 리처드 바크만에 대한 질문을 종종 받았는데, 그때마다 그는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1985년, 바크만이 필명 암(cancer of pseudonym)이라는 희귀한 병으로 손도 못 쓰고 죽었을 때 스티븐 킹은 "구역질나는 인간… 그가 죽어버려 기쁘다"고까지 소감을 밝혔다.
  사실 이 비운의 작가 리처드 바크만은 바로 스티븐 킹의 또다른 분신이었다. 스티브 브라운Steve Brown이라는 서점 직원이 이 사실을 밝혀낼 때까지 자그만치 8년이라는 시간 동안, 미국의 수많은 평론가들 어느 누구도 명확하게 리처드 바크만이 스티븐 킹이라는 사실을 밝혀내지 못했다. 리처드 바크만의 생전 마지막 작품인『여위어라Thinner』가 1984년 발표된 이후에 조금씩 동일인물설이 떠돌았지만, 직업적인 비평가들은 이에 대해 어떤 분명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에밀 아자르Émile Ajar 역시 비슷한 경우에 속한다.『유럽의 교육』으로 확고한 지위를 획득한 프랑스의 소설가 로맹 가리Romain Gary는 텍스트를 보지 않고 기성 작가로 자신을 판단하는 프랑스 평단에 염증을 느꼈고, 자신의 조카를 내세워 에밀 아자르라는 새로운 작가를 탄생시켰다. 이때 로맹 가리의 나이는 60세. 프랑스 평단은 이 '신인 작가'의 뛰어난 글에 열광했고, 에밀 아자르가 로맹 가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그것을 떠들고 다녀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평론가들은 "로맹 가리는 그런 글을 쓸 능력이 없다!", "로맹 가리는 끝난 작가다. 그가 그런 글을 썼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등등의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심지어 어떤 비평가는 에밀 아자르의 첫 작품인『열렬한 포옹』의 작가로 레이몽 크노와 아라공을 지목했는데, 그 이유는 "그 정도의 위대한 작가가 아니고서는 쓸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에밀 아자르의 두 번째 작품『자기 앞의 생』은 1975년 공쿠르 상을 수상하게 되었는데, 로맹 가리는 이를 거부하는 편지를 조카를 통해 보낸다. 왜냐하면 공쿠르 상은 한 번 수상한 작가가 다시 수상할 수 없는데, 로맹 가리 자신은『하늘의 뿌리』로 1956년에 이미 공쿠르 상을 수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고지식한 공쿠르 아카데미는 그의 수상 거절을 거부한다. 결국 그는 유일무이한 '공쿠르 상 2회 수상자'가 되었다.
  1980년 로맹 가리가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6개월 뒤,『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이라는 소책자가 발간되었다. 그는 여기에 에밀 아자르에 대한 모든 비밀을 밝히고 있다. 그가 죽을 때까지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에밀 아자르와 로맹 가리가 동일인물이라는 것을 확신하지 못했다. 그것은 특히 비평가들 사이에서 더 심했다. 로맹 가리는 자살하기 다섯 달 전에 친구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것이 아니라 무명이었을 뿐이네."

  물론 이런 일화들이 비평의 역할을 완전히 무시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분명 작품에 빛을 비춰주는 비평은 존재하며, 그런 연구들이 모여서 문학의 학문적인 분석방법을 발전시키는 것이리라.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에 대한 비평이 다만 말똥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비평과 분석에만 신경을 쓰다가는 정말로 작품을 읽는 예리한 감각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정말로 중요한 무언가를 놓쳐버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