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제 며칠이면 자리에서 물러나실 전두환 대통령에게 심심한 감사와 존경을 표해야 할 것이다. 그분을 때려죽일 생각 말고 그분이 사지 뻗고 편안히 이 땅에서 사실 수 있도록 대접해드려야 할 것이다. 그분의 노고를 치하하며 그분이 이땅에서 저지르신 일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가를 똑똑히 깨달으실 때까지 이 땅에서 사시도록 해드려야 할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이 한국의 역사에서 달성한 매우 위대한 업적이 있다. 그것은 바로 대통령의 신화를 깨주신 것이다. 대통령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다. 무슨 이승만 박사님이나 장면 박사님이나 김구 선생님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아무나 할 수 있는 것, 어떤 무지한 인간이라 할지라도(논리적 가설), 어떤 추잡한 인격의 소유자라 할지라도(이것도 논리적 가설)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대통령이라는 것을 국민에게 계몽시켜주시는 위대한 업적을 달성하신 것이다. 이것은 단군 이래 어떠한 인간도 우리 민족에게 가르쳐주지 못한 것이며, 문자 그대로 세종대왕이 이룩한 업적보다 더 혁혁한 업적인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기념비적 전 대통령의 동상을 세워야 할 것이다. 사천만의 성금으로 내 고향 천안 독립기념관 앞에![……]

- 김용옥,『새 츈향뎐』중에서

--------------------
    현재 다음에서는 만화가 강풀이 '26년'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하고 있다. 제목을 보고 알아차린 분들도 있겠지만, 이 만화는 1980년 광주의 일을 스토리의 출발로 삼고 있다.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 희생된 네 사람의 아들딸들과 다른 두 사람이, 26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 전두환의 암살을 계획한다는 줄거리이다. 아직 완결되지는 않았다(보지 않은 사람은 꼭 보라고 권하고 싶다).
  다음 연재 코너에 가보면 알겠지만 만화 내용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압도적 다수가 만화의 내용에 대해 공감하는 반면, 소수의 몇몇은 명예훼손까지 들먹인다. 나는 그곳에서 '전사모(전두환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라는 게 우리나라에 존재한다는 걸, 그리고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다.
  살아있는 사람에 대한 '암살'을 소재로 한 창작물이, 그것이 만화가 됐든 무엇이 됐든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그 '암살'이라는 것이 어떤 형태를 띠고 어떤 정당성을 가지느냐에 따라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지, 현존하는 인물에 대한 '암살'을 소재로 창작하는 것에 대해 원천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원칙적으로, 창작의 소재에 제한을 가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전두환의 암살을 소재로 만화를 연재하는 강풀을 지지한다. 전두환이 죽고 나서 이런 만화가 연재되었다면 별 논란이 없었겠지만 그와 더불어 의미도 사라졌을 것이다. 쿤데라가 말했듯이, 권력에 대한 민중들의 싸움이란 결국 망각에 대한 기억의 싸움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끈질기게 기억하지 않으면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무고한 시민들을 살해하고 수천억 원대의 비자금을 챙기고도 뻔뻔히 살아남아 있는 그는, 어쩌면 우리나라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너무도 쉽게 독재자, 그것도 보통 독재자가 아닌 독재자를 '용서'하고 마는 나라. 그 '용서'받은 독재자가 백주대낮을 활보하며 '힘있게' 지낼 수 있는 나라. 우리의 정치적 성숙도를 보여주는 좌표는 딱 그 수준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김용옥의 말을 듣고 우리는 통쾌해 할 수 있지만, 그런 비꼼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법적·정치적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지금, 문화계마저 손을 놓아서는 안 된다. 1987년 이후 19년, 이제 겨우 강풀이라는 만화가가 '창작에 의한 역사적 처벌'의 첫발을 내밀었다. 우리 문학계는 입버릇처럼 위기라고 떠들어대지만, 그 위기의 원천은 '기억하지 않는' 그들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덧붙여서 한마디. 전두환의 재테크 방법과 생활방식을 매뉴얼로 만들어 전 국민에게 배포할 것을 정부에 건의한다. 그 매뉴얼을 통해 우리는, 29만원을 가지고 골프도 치며 잘 사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쩌면 극빈층이 전부 사라지는 지상 최고의 낙원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くらし
생활

石垣りん
이시가키 린


食わずには生きてゆけない。
먹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メシを
밥을
野菜を
야채를
肉を
고기를
空気を
공기를
光を
빛을
水を
물을
親を
부모를
きようだいを
형제를
師を
스승을
金もこころも
돈도 마음도
食わずには生きてこれなかった。
먹지 않고는 살아올 수 없었다.
ふくれた腹をかかえ
부른 배를 안고
口をぬぐえば
입을 닦으면
台所に散らばっている
부엌에 흩어져 있는
にんじんのしつぽ
당근의 끄트머리
鳥の骨
새의 뼈
父のはらわた
아버지의 창자
四十の日暮れ
나이 사십의 황혼녘
私の目にはじめてあふれるの獸の涙。
내 눈에 비로소 넘치는 짐승의 눈물.


원문 :『일본名詩選』,김희보 편저, 종로서적, 1993
번역 : 자가번역

[……]전후 최초의 수상은 황족인 히가시 쿠니나루히코[東久邇稔彦]인데, 그는 수상으로서의 첫 라디오 방송에서 '일억 총참회'를 주장했다. 그것은 전쟁의 책임을 일부 지도자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전국민이 평등하게 짊어지고 반성하자는 것이었다.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최고 지도자의 책임을 전혀 묻지 않은 상태에서 '국민'의 책임을 물을 수가 있을까? 전후 도쿄 재판에서 전쟁범죄의 책임을 추궁당한 군인과 정치가 대부분은 상관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변명했다. 그것을 거슬러 올라가면 모든 명령이 천황의 이름으로 내려졌다는 것은 명백하다. 하지만 그 천황이 면책되었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결국 누구도 책임질 사람은 없다. 모두가 피해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 가라타니 고진,『윤리 21』중에서

--------------------
  어제 각 언론매체에서 크게 보도한 고(故) 히로히토(裕仁) 천황의 메모 내용을 오늘 보았다. 기사를 읽고, 또 메모의 내용을 읽고 떠오른 것은 호사카 유우지 교수가 2002년 발간한『일본에게 절대 당하지 마라』라는 책의 한 구절이었다. 책이 내 수중에 있지 않기에 정확한 인용을 하기는 어렵지만, 히로히토 천황이 생전에 일본의 전쟁책임에 대해 줄곧 이야기하고는 했었다는 내용이었다. 호사카 교수는 여기에 덧붙여, 이런 천황의 발언을 토대로 '전쟁 당시의 천황의 태도와 책임'을 깊이 연구한다면 한일 양국간의 문제 해결에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거라 보았다.

  그 이야기가 떠오른 이유는, 누가 보아도 명백한 연관성이 있기도 하지만, 좀 더 주의해야 할 점이 있지 않을까 염려되어서이다. 전후 일본이 지금에 이르러 천황의 상징적인 의미와 실제적인 영향력이 많이 줄어들었다고는 해도, 아직까지 일본 국민들에 있어 정신적으로 커다란 위치를 차지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특히 일본 우익들에게 있어서 히로히토 천황(물론 그들은 쇼와昭和 천황이라는 명칭을 더 좋아한다)은 절대적인 존재이다. 그런 존재가 A급 전범의 합사 때문에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거부했다는 사실은, 당연히 타격이 되겠지만 반대의 영향을 줄지도 모른다.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이, 전후 일본의 전쟁책임론은 주로 '일억총참회' 같은 형식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애초에 도쿄전범재판에서 천황을 면책시켰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다. 이번 메모 건과 같은 사건 역시 그런 의미에서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히로히토 천황이 전범의 합사를 반대했든 그렇지 않든, 기본적으로 그가 전쟁에 깊숙이 관여했고 국가원수의 자리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끼쳤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의 전쟁에 대한 책임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 사실을 분명히 하지 않고 흐지부지하게 넘어갈 경우, 천황의 전쟁책임 문제가 회피되는 것은 물론이고 A급 전범에게만 책임이 전가되는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그럴 경우 천황제의 문제점이 드러나기보다는 덮어지게 된다. 그것은 진정한 해결이 될 수 없다. 메모 건으로 인해 히로히토 천황의 생전 발언(주로 전쟁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다는 의미의)에 대한 증언들이 속속 나오고 있는 모양인데, 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주의를 필요로 한다. 신중하고 치밀한 일본인들을 대할 때는 우리 역시 철저하게 모든 면에 대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은 이용당할 수밖에 없다.


  덧붙여서, 천황(天皇, てんのう)과 일왕(日王)의 용어 문제에 대하여. 한국언론은 일왕이라는 용어를 고집하고 있는데, 일부에서는 제정 러시아의 통치자를 '짜르'라고 부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하며 용어 사용에 별다른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내 생각은 조금 다른데, 우선 '천황'이란 용어는 전전(戰前)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고 현재에도 분명히 사용되는 용어다. 현실적으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짜르'나 '칸(汗)'처럼 이미 사멸되어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용어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 '천황'이란 용어의 사용에는 분명한 주의를 요한다.
  그러나 천황이 '상징적인' 존재이고 커다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게 현실인 이상, 굳이 '천황'이라는 용어에 너무 심각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외교적인 관례를 보았을 때도 그렇다. 또한 '天皇'이 일부 한국인들이 해석하는대로 '하늘의 황제=전세계의 지배자=세계 정복의 야욕(?)'을 드러내는 칭호라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다. '천황'의 명칭은 일본에서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칭호로서, 정치·사회·종교적으로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왕'이라고 번역하기보다는 '천황'으로 써주면서 그 속에 담긴 의미와 역사적인 맥락을 잊지 않는 것이 올바른 자세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