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주말에 도서관을 갔는데, 그 김에 '현대문학' 6월호를 찾아내어 유종호 씨의 특별기고를 읽었다. 제목은 지금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하루키 현상과 무엇무엇의 몰락'이던가, 뭐 그런 식의 제목이었다.
  유종호 씨가 그런 글을 썼다는 건 미리 알고 있었지만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서 들춰보았는데, 정말로 하루키의 글에 대한 일반적인 폄하 이상의 것이 아니었다. 주요 요지를 말하자면 자기가 한국 대학생들의 문학 취향을 10년 가까이 조사해왔는데, 요즘들어 일본 작가의 비중이 높아지고 그 중에 특히 하루키를 좋아한다는 학생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는 그런 현상에 의문을 가지고 '노르웨이의 숲'을 읽었나보다. 그런데 그 소설은 대중문화의 편린 같은 것이고 허섭 쓰레기 같은 문학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단다. 이전의 수준높은 문학이 점점 사라지는 것은 이런 문학들이 자꾸 자리잡아가고 있기 때문이고, 이런 문학은 아직 '계몽되지 않은' 독자들에게 읽혔을 때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고도 말한다.
  (내가 요약을 일방적으로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글의 내용을 온전히 요약했을 때 저런 식의 발언으로 정리할 수밖에 없다)
  그의 그 '특별기고'라는 것에 완전히 빠져 있는 것은, 그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그런 근본적인 반성이 전혀 없다. 왜 이 시대의 학생들이 일본 소설에 열광하게 되었는지, 그 중에서도 어째서 하루키인지에 대한 사회적·구조적 분석이 전무하다. 그냥 쉽게 읽히니까 너도나도 읽는다는 식이다. 그렇다면 2차대전 즈음에 베스트셀러였던 데미안은 쉽게 읽히니까 베스트셀러가 되었나? 아니면 이전 세대에 비해 이 세대의 문학 수준이 대폭 낮아지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글을 읽어보면 바로 그런 의미의 말이 하고 싶은 것 같다. 이 시대의 문학 수준이 너무 낮다는 것, 그런 문학은 '문학도 아니라는' 것. 유종호 씨의 글은 그런 의도로 읽힌다. '계몽되지 않은 독자' 운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추측이 가능하다.
  물론 문학 수준(이라는 게 있다면)의 기준을 어떤 형이상학적이고 본질적인 의문을 담고 있으며 대중적이지 않다는 것으로 삼는다면, 나 역시 그의 발언에 동의한다. 이 시대의 독자층은 확실히 이전 시대에 비해 좀 덜 어렵고 쉽게 읽힐 수 있는 것을 선호한다.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대중'의 범위와 규모가 확장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우리나라 독자의 수준이 전체적으로 내려갔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리고 문학자들, 특히 비평가들이라는 사람은 왜 이렇게도 문학 이외의 매체에 대한 고민이 전무한지 모르겠다. 이 시대의 문학을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물어야 할 것은, 대중적인 문학이 왜 인기 있는가가 아니다. 본래 대중은 대중적이고 편안하게 다가오는 글쓰기를 선호하기 마련이고, 그건 여타 다른 매체에서도 다르지 않다. 대중은 대중적인 것을 선호하기에 대중인 것이다. 대중적이지 않은 것을 선호하는 집단을 우리는 대중이라고 규정하지 않는다.
  문학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먼저 물어야 할 것은 '문학이라는 것' 자체가 왜 읽히지 않는가이다. 왜 문학은 읽히지 않는가? 이 전반적인 상황 자체를 규정해야 한다. 팝적인 글쓰기를 '상품'이라고 친다면, '상품'이 아니라 '예술'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 작품은 왜 읽히지 않는가? 그런 범위를 최대한 넓게 적용했을 때조차 읽히는 규모가 점점 줄어들어만 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건 당연하게도, 유종호 씨가 한창 팔팔할 때에 비해서 다른 할 게 많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시간이 남아돌 때 할 수 있는 건 책읽기 밖에 없었다. 다른 건 당구를 치든 롤러스케이트를 타든 밖에 나가야 하는데, 집에서 할 수 있는 건 책읽기 뿐이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책읽기가 여가의 매체로서 가지는 힘은 독보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금 시대의 사람들은 집 안에서도 할 게 너무너무 많다. DVD도 봐야 하고, 웹서핑도 해야 하고, 온라인 게임을 하거나 뮤직비디오를 감상해야 한다. 책처럼 지루하고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하며 중간에 중단하면 아무 의미도 없어지는 매체에 매달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먼저 고민하지 않고 독자의 수준 운운하는 것은 비평가로서의 의무를 저버린 것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다.
  그리고 또 하나, 하루키의 글이 과연 '퇴폐적이고 무의미한'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 나는 상당히 회의적이다. 아마 유종호 씨는 하루키에 대해 충분한 시간을 들여 연구해보지 않은 듯 하다. 하루키에 대해 꽤 깊은 식견을 갖고 있는 동료 비평가 남진우 씨에게 조금 물어보기라도 했다면 좋았을 것을. 쉽게 읽힌다고 그냥 그렇게만 판단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작가가 어떤 세계를 추구하는지에 대해 파악하지도 않은 채 그의 문학을 섣불리 말하는 사람을 비평가라고 불러도 될까?

2006/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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