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초등학생



나는 그 소녀를 독거초등학생이라 부르련다
신문지상과 방송에 사회문제로 오르내리는
독거노인이라는 말을 본따서

소녀는 여덟 살 초등학교 1학년
단칸 셋방에 할머니와 둘이 산다
병중이던 할머니 2개월 전 돌아갔다
엄마는 집 나간 지 오래
아버지는 5년째 교도소 수감중
할머니 돌아가자마자 동사무소에서는
매달 지급해주던 생계보조비를 끊었다
생활보호대상자가 아니라는 것
보호자가 어쨌든 생존해 있으므로
소녀는 자격이 없다는 것
법이 그렇다는 것

그러든지 말든지, 소녀는 그런 따위는 몰라. 다만 이제 자신이 어엿한 독거인이 됐다는 것. 이 광막한 우주에 홀로 거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됐다는 것은 아는 것 같다. 보라.

밥 짓는다
바가지에 쌀 씻어 밥솥에 안친다
방 청소한다
빗자루로 쓸고 쓰레받기로 받는다
옷 빨래는 대야에 넣고
비누질 찰싹찰싹
이웃이 넣어주고 간 밑반찬에
저녁밥 올려 먹고
깜깜해져 오네 불 켠다
형광불빛이 깜박깜박 깜박깜박 깜박, 다섯 번 만에 들어온다
엎드려 공책 편다
연필 꼭꼭 눌러 쓰기 숙제를 한다 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어머니를 책가방 속에 잘 챙겨넣는다
이부자리 편다 베개 올려놓고
마지막 형광등 스위치를 탁, 내린다
불이 꺼지고
눈이 꺼지고
몸이 꺼져……

……아, 꺼져요. 하지만 나는 소녀가 무엇보다 형광등 불 켜고 끄는 일을 좋아할 거라고 상상한다. 쉽고, 무슨 놀이 같기도 하고. 탁 내리면 환했었는데 얼른 깜깜해지고. 톡 올리면 깜박깜박 다섯 번이나 술래놀이처럼 하다가 화화화 화안해지고.
저 멀리 장수에서 산다는 소녀의 일을 신문 하단 몇 줄 기사에서 본 후로, 그곳으로부터 흔들려 오는 빛과 소리를 자꾸 느낀다. 몇 차례 곁인 듯 파고드는 가늘은 그것. 빛과 소리. 몇 날을 번갈아 왔다갔다하더니 어느 하룻날은 둘이 함께 왔다.

소리 - 플라스틱통 같은 데서, 플라스틱 컵일지, 쌀을 한 컵 또는 두 컵 떠내는 소리. 역시 플라스틱 바가지일지, 떠낸 쌀을 담아 물 받는 소리. 조물조물 씻는 소리. 마지막 물 속 쌀알이 차륵이는 소리.
빛 - 파르르파르르 파르르파르르 파르르, 다섯 번이나 떨리다 들어오는 소녀의 방 형광들불. 펼친 공책 위에 새하얗게 깔리는 형광불빛. 형광불빛의 잔디밭. 잔디밭 위에 엎드린 소녀. 꽃 나무 나비가 모이는 공책 칸칸마다 또 파르라니 쏟아지는 잔디.

그런데, 독거노인이라고 들었을 때는 밭은기침, 세발 수발, 오물 수발, 간병, 말벗 등의 여러 말이 으레 떠올라와 주는데, 독거초등학생이라고 불러봐 보니 아무, 아무 떠오르는 게 없다. 독거초등학생이라는 이름은 사실은 아무 생각도 할수없게 하는 이름인가 보다. 생각이 막히는, 막혀버리는 그런 이름은 본따 짓지도 부르지도 말아야 하는가 보다.

나는 그 소녀의 독거초등학생이란 이름을 지우며 마지막으로 뒤돌아보았다. 그딴 이름 지워지자마자 소녀는 저 아득한 우주 꽃씨로 잠들었다. 우주 어둠이 내려와 펼쳐진 채인 소녀의 알림장 보호자 확인란에 별을 박았다. 빛나는 우주 사인을 했다. 소녀 잠들기 직전 소녀의 꽃손을 빌어 쥐고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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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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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람 2007/03/18 00:05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독거초등학생에게 참 미안하다. 세상이 이런걸 고치지 못하고 있으니...

  2. 대현 2007/03/18 00:19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어머 재탕이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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