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벨트를 꼭 매야 하는 이유는? 한국인이 모여 사는 미국 한 지역의 운전면허 필기시험 문제다. 이 객관식 문항에서 한국인은 주로 ③번 '운전자와 승객의 안전을 위하여'라는 답을 고른다.
  가장 정답 같아 보이기 때문인데, 그것은 틀린 답이다. 정답은 ④번 '그것이 법이니까'이다. 한국인들을 골탕 먹이는 함정문제라고 고약하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미국사회의 엄정한 법 집행 의지와 준법의식을 되새길 수 있다고 여기면 마음이 편하다. 미국인들이 어떤 경우에도 폴리스 라인을 범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처벌이 전제된)법이니까'이다.[……]

- 정병진 논설위원,『한국일보』2006년 9월 13일자 '지평선'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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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전에 강준만이 한국일보에 '도덕과 도덕주의'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는데, 그것은 '다른 이들에게는 도덕주의의 잣대를 내밀면서 스스로의 도덕은 확보하지 않는' 정치판을 향해 던진 쓴소리였다. 강준만은 그 이야기를 정치인들에게 하고 싶었겠지만, 나는 그것이 한국인들의 전반적인 성향 중 하나라고 본다.
  위 인용문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이지만,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소위 '모범답안'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무엇이 가장 '도덕적'인지에 대해서 거의 본능적이라 할 정도로 잘 알고 있다. 아마도 그것은 미취학 아동 시기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심지어는 대학교 시절마저 '모범적인 답'을 주입시키는 우리 교육체계에 가장 큰 원인이 있을 것이다.
다들 그렇게 '도덕적'인 게 뭔지 잘 알고 있는 건 문제가 안된다. 오히려 좋은 일이다. 아예 무도덕의 혼란상태에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것을 정말 '답'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들 겉으로는 그게 '도덕적'이라고, 지켜야 한다면서 속으로는 그걸 비웃는다. 지키는 사람이 바보라고 생각하고, 손해보는 일이라는 감정을 바탕에 깔고 있다.
  이게 강준만이 말하는 '도덕과 도덕주의'가 현실적으로 작동하는 메커니즘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도덕적인 것', '모범적인 것'에 대한 주입은 잔뜩 되어 있는데, 그것이 체화되어야 하고 현실에서 효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아무도 믿지 않고 또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에 남들에게는 '도덕'의 잣대를 들이대면서 그 잣대를 자기 자신에게는 대어보지 않는 것이다. 원래 이런 형이상학적인 문제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가 클수록 그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이 쉽게 형성된다. 그 간격이 작으면 그걸 어떻게든 메꿔보려 애쓸텐데, 그렇게 애쓰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그걸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어째서 나타나는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우리나라가 줄곧 혼란상태였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유효하다. 조선 말기의 외세침략, 개화기의 혼란, 일제 강점기의 식민통치, 해방기의 아노미, 한국전쟁, 이후의 기나긴 독재통치. 죽 늘어놓고 보면 거의 150여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사람들은 뭔가 '제대로 믿을 건덕지'를 전혀 갖지 못했다. 위정자가 겉으로 내세우는 것과 현실은 항상 달랐고, 그 현실이 썩 안정된 것도 아니었다. 이러니 (또다시 강준만이 이야기하는) '각개전투의 국민성'이 형성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믿을 것은 '내 몸뚱아리 하나' 밖에는 없는 사회. 그런 사회속에서 개인은 자기 자신과 자신을 중심으로 한 가족 밖에는 믿을 수 있는 대상이 있을 리 없다. 그러니 다들 공교육 대신에 어마어마한 사교육비를 들여 자식들을 교육시키고, 국가의 사회보장 시스템 대신에 종신보험과 펀드와 부동산을 믿는 것이다.
  개개인이 열심히 사는 것이야 별로 나쁠 것이 없겠지만, 내가 제일 걱정하는 것은 이것이 '정당화'되어 굳어지는 것이다. 다들 세금은 별 저항없이 납부하는데, 정작 어떤 일이 생기면 나라에 그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학 등록금이 비싸면 세금을 걷은 국가가 그 세금으로 등록금을 낮추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등록금을 위해 피땀흘려 일하기 바쁜 것이다. 의료비가 너무 비싸면 국가가 그것을 보조해야 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야 하는데, 입원비와 치료비가 너무 비싸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다. 시스템이 시스템의 역할을 제대로 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효율적으로 기능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개인을 개인으로서 온전히 존재하도록 자유롭게 놔주지도 못하기 때문에 불신할 수밖에 없다. 효율적으로 기능하면 그 시스템이 개인을 타이트하게 조이더라도 버티고 살아갈 수 있을테고, 온전히 존재하도록 놔두면 간섭없이 살아갈 수 있을텐데 그렇지도 못하다(그 정점이 징병제도다). 이 시대의 한국인이 믿는 시스템은 '공무원' 뿐이다. 세금으로 만들어진 시스템이 납부자에게 작용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 시스템 속에서 안정을 얻기를 바란다.
  이런 경우 선택은 두 가지다. 시스템을 최대한 거부하든가, 시스템에 최대한 종속되는 것이다. 시스템을 최대한 거부하면(어차피 완벽한 거부는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한 불가능하다) 그 삶은 물론 안정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시스템을 믿을 수 없는 인간에게는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그리고 그 삶을 살아나갈 자신감이 있다면 불안정은 아무 문제가 안된다. 인생은 본래 불안정한 것이니까(당신이 언제 죽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당신조차도 모른다, 당신의 죽음임에도 불구하고). 반면에 시스템에 종속된다고 해도 무조건 편한 삶은 아니다. 그 안에는 나름의 규제와 나름의 불안정이 존재한다. 인생이 본래 그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당신은 무얼 택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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