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것과 돈벌이를 혼돈하지 않은 지이드같은 문인에 대한 - 즉 돈에 대한 - 선망은 피상적이다. 글을 써서 돈을 벌 필요가 없을만큼 돈이 있다해도 편안하지 않을 것이다. 그 돈은 어디서 생겼는가? 누가 어떻게 해서 번 것인가? 그러니까 역시 글을 써서 돈벌이를 하면서, 글을 써서 돈벌이를 하는 자기자신과 싸워가는 수밖에 없다. 요는 휴식을 바라서는 아니되고, 소음이 그치는 것을 바라서는 아니된다. 싸우는 중에, 싸우는 한가운데에서 휴식을 얻는다. 이 말도 말로 하면 싱겁게 된다.[……]
- 김수영,『김수영 전집 2-산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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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를 하고 나니 세상은 다시 '이곳'이었다. '이곳보다 더한 이곳'이었다. 생활이 돈과 직결되는, 심지어 동의어가 되는 세상은, 확실히 녹록치 않았다. 내가 2년간 있었던 '이곳'이 연차에 따라 계급을 세웠다면, 지금 '이곳'은 소유한 부에 따라 계급을 세운다. 지금 '이곳'에서는 "더욱 각도 높은 경례의 날"(기형도)를 세워야 한다. 다만 계급장이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아니, 오히려 지금 '이곳'의 계급장은 더욱 더 잘 보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머니에게 손을 벌리지 않기로 마음먹은 딱 그만큼, 당장 생활에 들어가는 돈이 궁했다. 집에 처박혀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니, 영 내키지 않고 하기 싫은 일이라도 당장 달려들어서 열심히 하는 수밖에. 더 많은 책을 읽고 싶고, 여러가지를 생각하고 싶지만 세상은 그렇게 쉽게 돌아가지 않는다.
지이드처럼 돈이 많다면 김수영과 같은 마음으로 불편해할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내 자신에 대해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돈이 많아서든 그렇지 않든 '생활과 싸우지 않고 있는' 나 자신은 참으로 맥이 빠지는 놈이라는 것이다. 생활에 탄력이 없어지고, 한없이 늘어져서 책을 읽는 속도도 일을 할 때보다 느려진다. 그러다가 자기 자신을 한심하게까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것은 의미도 없고 불쾌하다. 결국 나는 김수영의 말에 공감한다. "싸우는 중에, 싸우는 한가운데에서" 휴식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이 말도 말로 하면 싱겁게 된다."
내가 제대를 하고, 내 동생은 몇 주 뒤에 제대한다. 나에게 뭐 하나 제대로 해준 기억이 없는 국가는, 나와 내 동생이 국가의 부름에서 벗어났으니(즉 어떻게든 돈을 벌 수가 있으니), 3급 장애인인 아버지에게 지원하던 의료비는 더 이상 국물도 없다고 말한다. 뭐 열심히 벌면 그깟 약값이야 어떻게든 되겠지만, 내가 졸릴 때 잠 안자고 경계근무를 서던 2년은, 또는 자다가 일어나서 같은 군인의 상처를 돌보던 2년은, 갑자기 꽤나 값싸게 느껴졌다. 그런 느낌은 참으로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내가 싸우기로 마음먹었더라도, 정말로 어쩔 수가 없다.
참고글 : 다시 이곳을. 이곳보다 더한 이곳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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