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 13일, 8·15 특집으로 방영된 <SBS 스페셜>에서는 '일본 청년 아오키의 끝나지 않은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일본 우익의 문제를 다루었다. '아오키 신이치'라는 32세의 일본인을 중심으로 제작한 이 다큐멘타리에서는, 일본의 우익이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되며 또 어떤 구조 속에서 만들어지는가를 분석했다.
아오키 씨는, 음반 프로듀서이자 초등학생 딸을 둔 평범한 가장이지만, '대일본민족주의자동맹'이라는 단체를 이끌어가는 핵심멤버이기도 하다. 이들은 천황을 '아라히토가미(現人神, 살아있는 신)'이라는 명칭으로 부르며 떠받들고,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동상이 있는 공원에서 군사훈련을 하기도 한다. 이들의 집회는 신을 부르는 신도의식으로 시작되어, 기미가요를 엄숙히 제창하고 그들만의 정신훈련을 실시한다. 그 주된 내용은 공산주의 반대, 한국 정부에 대한 비판, 일본의 영토 회복(독도) 등을 강하게 주장하는 것이다. 그들은 역사를 다시 보아야 할 쪽은 일본이 아니라 한국이라고 말하며, 종군위안부 문제는 조작된 것이고 독도는 당연히 일본의 땅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전쟁이 일어나면 당연히 국가를 위해 몸마쳐야 한다고 믿고 있으며, 폭력이 필요한 경우에는 테러라도 불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제작팀은 아오키 씨를 위안부 할머니들의 쉼터인 '나눔의 집'에 초대하고 여러가지 자료를 보여주었지만 그를 설득할 수는 없었다. 아오키 씨는 '나눔의 집'에 관광차 방문한 수많은 일본인들을 보며 "세뇌다", "정치 선전 선동의 목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등의 발언을 하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군인'의 고백을 시청하고 난 뒤에도 끝끝내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끝내는 화를 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와의 접점은 결국 찾을 수 없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맞물려 6자 회담도 취소되고, 미국이 설치는 걸로 모자라 남의 집 빼앗아 들어앉은 이스라엘까지 헤즈볼라-레바논을 침공하면서, 세계 정세는 참으로 불안스럽게 움직이고 있다. 이럴 때 내가 항상 신경을 쓰게 되는 것은 이웃나라 일본의 움직임이다.
독일에 신新나찌(Neo-Nazi)가 있다면, 일본에는 닛뽄우요꾸(日本右翼, 일본 우익)가 있다.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일본에서는 스스로를 '우익', '민족주의자'로 자처하는 사람 대부분이 독일의 네오 나찌와 가까운 지점에 서 있다. 이들의 특징은 과거를 반성할 줄 모르고(또는 반성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고), 반대로 역사의 자기 합리화에 능하며, 국가의 폭력과 군국주의를 신봉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구성원 대부분이 20-30대의 비교적 젊은 세대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스스로가 속한 집단에 대해 단순한 소속감 이상의 종교적 열정 비슷한 것을 간직하고 있다는 공통점도 있다.
진중권이 그의 책『폭력과 상스러움』에서 잘 분석해주었듯이, 극우의 정신구조는 기본적으로 '나'라는 개인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집단'의 정체성에 소속됨으로써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에 기반한다. '나'라는 개인이 스스로 자존감을 확립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집단'에 소속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안도하는 것이다.
무엇이 이들을 그런 '집단'에 소속되도록 만드는가? 현대 사회는 개인이 원자화 상태를 유지하는 데 있어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개인이 특정 집단에 소속될 기회를 가지기 어려운 사회인 것이다. 예전에 부족·마을 등의 생활공동체를 통해 느낄 수 있었던 소속감은 아파트로 대표되는 현대의 생활구조로 인해 사라졌다. 평생 직장으로 대변되던 업무공동체도 신자유주의 경쟁으로 인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게 되었다. 계속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의 구조 속에서, 개인의 정신구조는 그에 걸맞게 바뀌지 못했기 때문에 인간은 어딘가 기댈 곳을 찾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미신'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음모론'이며,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극우집단'이 된다.
사회구조와 인간의 괴리에 의해 나타나는 이런 현상들의 문제점은 이것이 개인에게 어떤 '사고思考'와 '책임'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불안한 일이 있으면 점집에 기대면 그만이고, 사회에 문제가 있으면 모든지 '음모를 꾸미는 세력'의 탓으로 밀어놓으면 된다. '나'라는 개인의 실존과 관련된 온갖 문제들에 부딪히면 '집단'의 이름으로 회피할 수 있다. 그 안에서 나는 국가를 대신하며, 천황의 빛나는 이름 아래 움직이는 신성한 존재가 되니까.
아직까지 일본 내 대다수 국민들의 반응은 무관심에 가깝다. 일찍 서구문명을 접했고 유교문화의 영향이 크지 않은 일본에서는 우리나라에 비해 개인의 생활에 대한 간섭이 그다지 크지 않다. 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든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다. 그러나 동시에, 양국 간의 역사를 진지하게 반성하거나 일본의 전쟁책임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것에 대한 반응 역시 무관심이다. 지나간 역사에 대해 큰 미련을 갖지 않는 그들의 심리구조상, 옛 일에 대해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다.
일본에서 이런 '행동하는 우요꾸'에 속하는 사람은, 방송에서 나온 통계에 따르면 일본 국민의 0.1% 정도다. 0.1%라고 하면 적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12만명은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본 역사를 떠올리면 나는 항상 불안해진다. 당시 일본에서 군부와 정계를 움켜쥐고 움직이던 사람들은 언제나 소수의 엘리트들이었다. 그리고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그들이 주입한 '국체'와 '천황'의 신화를 '무신경하게' 받아들이고 전쟁에 참여했다. '남에게 신경쓰지 않는 것'과 '무비판'은 종이 한 장의 차이다. 그리고 둘 다 브레이크가 없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역사를 뒤돌아보면 일본은, 거의 언제나 소수의 엘리트가 이끌어 온 나라다. 극우 청년 아오키의 발언과 일본 보수 정치인들의 발언 사이에 커다란 차이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 내 가슴을 무겁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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